[김수영의 그림편지] 김일환 작 ‘아리랑을 품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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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40면   |  수정 2019-04-26
아리랑 부르며 희망 찾던 민족의 모습, 마을 수호신 ‘당산나무’와 같은 우직한 매력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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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림에 웬 ‘아리랑을 품다’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라는 뜨악한 표정으로 김일환 화가의 작품을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지 않은 것을 보니 숲은 아닌 듯하고 아마 어둠이 찾아든 어느 마을에서 자라는 나무인 듯 합니다. 굵은 나무와 가는 나무 서너 그루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왠지 힘이 느껴집니다. 어두운 톤의 파랑 바탕에 흰색의 붓질로 표현된 나무는 잎 하나 보이지 않지만 아마 많은 세월을 살아온 듯 시간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그 세월 동안 나무 스스로 많은 일들을 겪고, 또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바라보면서 살았으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 나무를 묵묵히 바라보니 문득 김 화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의 아호는 목우(木愚) 입니다. 어리석은 나무라는 뜻이지요. 스스로를 낮춰 지은 것이지만 그의 외모가 나무를 닮은 것은 사실입니다. 아주 잘 자라 건강한 나무처럼 보입니다. 올해 일흔인 그의 키는 무려 183㎝나 됩니다. 첫눈에 거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체구입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전봇대, 키다리, 빌딩 등이었지요.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당시는 저처럼 큰 아이들이 없었으니까요. 어디를 가도 첫눈에 보였지요. 버스도 높이가 낮아서 버스를 타면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이래저래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사춘기 때는 이렇게 키가 큰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 생각돼 원망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전사했다 합니다. 그가 백일도 안된 때였습니다. 아버지 없이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늘 엄했습니다. 반항은커녕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사춘기 때 억압됐던 것들이 봇물 터지듯 분출했습니다.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성격이 불 같다고나 할까요. 한번 화가 나면 주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격을 누그러뜨려 보자고 그림을 그렸고 여기에 취미를 붙이면서 많이 온순해졌습니다. 사춘기의 거센 바람이 잦아들고 나니 그동안의 어리석었던 제 모습이 부끄럽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아호를 목우라 지었습니다.”

모습이 나무 같아서인지 그는 자신을 닮은 나무가 좋았습니다. 중등교사 생활 20년을 채운 1999년 그는 미련없이 학교를 나온 뒤 전업작가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퇴직을 미리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1996년 가창의 깊은 산골마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를 품은 숲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나무를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아리랑을 품다’일까요. 그가 그린 나무는 어릴적 늘 봐왔던 고향의 당산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당산나무는 신목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켜보며 마을의 안위를 보살펴왔던 마을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는 것은 물론 힘이 들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나무이기도 합니다.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수많은 이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이해를 해준 베풂의 나무, 배려의 나무이기도 합니다.

아리랑도 당산나무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리랑은 한의 노래이자 희망의 노래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희망을 찾던 것이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당산나무는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를 가진 나무이기도 하지만 저의 심적 세계를 대변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는 당산나무의 우직함이 좋다고 합니다. 늘 그 자리에 서서 변함없이 인간과 함께한 나무입니다. 어리석은 자신이 배워야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추억을 주었던 나무가 좋았고 나무를 사랑해 산으로 들어와 산사람으로 산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나무는 늘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일으키는, 인생의 방향성을 일깨우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스며있습니다. 나무처럼 늘 품어주고 베풀어주는 나무가 되려는 소망이 그의 그림에서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김일환 화가는 영남대 회화과를 나왔으며 대구, 서울, 대전,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등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대구미술협회장, 대구예술인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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