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속의 싱그러운 일상 ‘단독’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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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33면   |  수정 2019-04-26
■ 단독주택살이
20190426
단독주택살이 10년차에 접어든 황윤섭·박월숙 부부가 잔디를 관리하고 있다.

약간 어두운 톤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분홍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풍경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꽁꽁 닫힌 철문 뒤에서 기자를 먼저 반긴 것은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듬뿍 받고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돋아난 잔디였다. 첫눈에 봐도 웃자란 잡풀 없이 잘 자란 잔디에서 주인의 깐깐한 성품과 이 집에 대한 따스한 사랑이 느껴졌다.

잔디밭이 끝날 즈음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벽돌집 아래로 작은 나무와 꽃들이 보였다. 아담한 나무 사이로 피어난 하얀 꽃들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초록이 하얀 빛깔과 참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기자를 본 집주인 황윤섭(56)·박월숙씨(54) 부부는 이렇게 놀라는 기자를 의아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별다른 것도 없는데 취재거리가 되는지…” 하며 겸손한 말로 운을 뗀 황씨 부부는 잘 자란 잔디를 밟아도 되는지 망설이는 기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밟아도 된다. 이렇게 폭신한 잔디 밟아보는 재미를 주택 아니면 어디에서 느끼겠냐”고 한다.

단감·키위·블루베리·무화과·대추나무…
벽돌집 아래 아담한 나무들과 예쁘게 핀 꽃
아파트 지내다 10년전 주택생활 더없이 만족
봄·여름철은 시간 날때마다 잔디관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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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섭·박월숙 부부의 집 대문. 문의 모양과 색깔, 문패, 서예글 등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서예글은 아내 박월숙씨가 쓴 작품이다.
그렇게 조심스러워한 이유가 있었다. 황씨 부부가 잔디 손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 황씨는 “요 며칠 날씨가 따뜻해서 웃자란 잔디가 좀 있다”며 잔디깎는 기계로 잔디밭을 누비며 다녔다. 아내 박씨는 호미로 열심히 잡풀을 뽑고 있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일주일만 잡풀을 뽑지 않아도 잔디밭이 잡풀 투성이가 된다”며 “얼마 전 한주 동안 여행 을 다녀오느라 잡풀을 뽑지 못했더니 잔디밭이 엉망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주기로 이렇게 잔디와 마당을 손질하느냐”고 물으니 박씨는 “시간날 때마다 수시로 한다. 봄과 여름에는 오랫동안 방치하면 마당이 금방 수풀천지가 된다”며 “나무 손질과 잔디 깎기는 남편이, 잔디 물주는 것과 잡초 뽑기는 내가 담당한다”고 답했다.

꽤 넓은 잔디밭을 크고작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수종을 잘 모르는 기자가 봐도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황씨의 나무 자랑이 이어졌다.

“단감, 홍시, 키위, 블루베리, 석류, 무화과, 매실, 살구, 대추나무 등 유실수가 꽤 많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수령이 제법 오래됐는데 블루베리나무와 사과대추나무는 몇년 전 심었습니다. 특히 집 아래에 심은 블루베리나무는 꽃이 예쁘고 열매도 잘 열립니다. 가족 간식거리로 좋지요. 유실수가 많다보니 가을이면 추수하느라 제법 바쁩니다.”

1m 정도의 아담한 키에 작은 하얀꽃이 풍성하게 피어있어 참 예쁘다고 생각한 나무가 블루베리나무라고 했다. 열매의 달고 이로운 성분 만큼이나 꽃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기자의 머리를 스쳤다. 취재를 하면서 이런저런 사실을 기자도 많이 배웠다.

남편의 말을 이어 아내 박씨가 키위나무 자랑을 했다. 이 집에는 키위나무가 4그루나 있었다. 2그루는 대문 위로 넝쿨을 올리고 있었고 다른 2그루는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 아담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키위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어 암수를 같이 심어야 해요. 처음에는 나무가 너무 크고 넝쿨이 잘 자라서 자를까 생각을 했는데 꽃도 이쁘고 열매도 맛이 있어서 그냥 놔두었습니다. 키위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데다 열매가 워낙 많이 열려 동네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어 좋지요.”

황씨 부부는 딱 10년 전 수성구 범어도서관 뒤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야시골공원과 지근거리에 있는 그들의 집은 도심에서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에 자리했다. 두 사람 모두 시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남편의 사업과 자녀의 학교 때문에 외곽지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성구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단독주택을 찾다가 발견한 집이 바로 이 집이다. 이들 부부는 이 집에서 아주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수십년째 아파트로만 향하던 사람들의 발길이 단독주택으로 향하고 있다. 주택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으려는 움직임 속에서 오래된 주택가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려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택에서 새로운 삶의 둥지를 틀려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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