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영의 시중세론] 한국은 북미협상의 중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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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22면   |  수정 2019-04-26
북미협상의 당사자 아니고
분배 적은 촉진자돼도 안돼
합의의 중재자로 나서야만
성사에 따른 새로운 환경서
한국주도 경제공동체 가능
[최철영의 시중세론] 한국은 북미협상의 중재자다

4월 한 달 동안 한반도를 중심으로 정상회담이 한창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고, 지금은 중국 베이징에서 중러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북미회담의 중재자인가 아니면 촉진자인가 하는 문제가 뜨거운 화두가 됐다.

우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문맥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국면에서 한국정부가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으로 북한의 편이 돼주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북한의 이런 언급을 보면 한국정부가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비난은 현실과 매우 다른 이야기인 듯하다.

북한이 제기한 한국의 당사자 역할 이슈는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이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포럼에서 이어받았다. “미국도 북한도 각자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기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본다”고 평가하면서다. 기존의 중재자 역할이 아닌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결국 촉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결국 한국 정부는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싶은데 북한은 당사자가 되라고 요구하고, 미국은 촉진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형세다. 딱 잘라 이야기하면 한국은 북미회담의 당사자가 아니다. 북미회담의 궁극적 목표는 비핵화와 제재해제인데 이 문제에 대하여 한국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 북한이 말하는 당사자론은 그저 북한의 편에 서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국제연합(UN)의 제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북한과 한편이 된다는 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을 옹호하는 결과가 돼서 국제법은 물론 우리의 국익과 상치된다.

그래서 미국과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촉진자 역할은 어떤 협상이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는데 협상의 당사자들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논의를 위한 협상의 테이블에도 나오려고 하지 않을 때 협상을 위한 명분과 공간을 제공하거나 우호적인 합의를 위한 주변 환경을 조성해 주는 편의제공 역할이다. 국제협상론의 단계로 보면 주선이나 중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없이 미국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하고 북한의 의중을 미국에 알리면 된다. 필요하다면 평화의 상징으로 판문점이나 제주도와 같은 적절한 회담장소를 제공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한국은 한반도의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판을 깔아주고 나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방관자일 수 없다. 북미의 협상과 합의 과정에 우리의 입장과 이익은 반영되지 않고 합의의 결과에 따른 남북관계의 개선이 북미 간의 합의에 종속되게 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요구해서 무엇을 가져올 수 없고 북미가 결정해서 주는 걸 받아야 한다. 촉진자 역할의 가벼움은 결과의 분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설 자리는 중재자다. 중재자를 현안문제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지만 국제사회의 분쟁해결 사례에서 현안문제의 양극단의 입장에 있지 않은 이해관계자가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은 북핵문제로 표출된 한반도평화와 통일문제의 민족 당사자다. 동시에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 고착화되어 있는 안보문제의 안전판으로서 한미동맹의 당사자다. 그러니 한국 정부는 북미라는 양 극단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와 합의에 이르는 순탄치 않은 길을 만드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만 한다.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북미 간에 작은 합의(스몰딜) 또는 큰 합의(빅딜)를 통해 조성되는 지금보다 나은 한반도 환경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평화경제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대 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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