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선] 성 평등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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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5   |  발행일 2019-04-25 제30면   |  수정 2019-04-25
한국의 성 격차지수 115위
유리천장지수 OECD 꼴찌
불법촬영 범죄 97%가 남성
성폭력이 끊이지않는 이유
그기반엔 여성 성차별 있어
[목요시선] 성 평등은 아직 멀었다
이승연 소우주 작은도서관장

얼마 전 ‘성폭력예방교육’ 강의 중 ‘불법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한 남성이 “정준영 같은 괴물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노래방 살인 사건’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매도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듣는다. “사실 우리 직장에는 성희롱하는 남자가 없어서 예방교육을 할 필요가 없지만”이라거나, 강의 중 성폭력사례를 이야기하는데 “강사님, 대부분 남성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얼마 전 친구가 데이트하러 가는 아들에게 ‘상대방을 존중해라’고 하자 ‘엄마,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는 거예요’라고 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필자가 상담중인 성폭력피해자가 고소를 결심한 것을 안 주변의 많은 남성이 “그래도 알고 보면 그 애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잖니. 꼭 고소를 해야겠니”라는 말에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들은 결국 그 괴물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건을 분석할 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한 개인이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틀을 봐야 한다. 여성폭력사건을 사회 구조적 맥락과 분리시키는 것은 단편적이고 왜곡된 해석을 낳을 위험성이 높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억울한 남성도 많을 거예요”라고 한다. 흑인 인권을 이야기하는데 ‘착한 백인도 많다’고 말하는 격이다.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것 같아 억울함을 토로하는 남성들은 테러리스트를 붙잡아야 하니까 검문에 응해 달라는 공항 검색원에게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지 말라’고 왜 따지지 않을까.

2017년 성별이 확인된 강력 흉악범죄 피해자 중 여성 비율 89.9%(검찰청, 2018), 애인에 의한 살인사건 피해자 86명, 4일에 1명(검찰청 국회 제출자료 2017년 기준) 꼴이다. 불법촬영 가해자 97%가 남성이라는 것은 정준영, 승리라는 개별적인 괴물만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얼마나 여성 폭력이 만연한 일상인지 너무나 처절히 보여주는 통계다. 폭력은 차별을 먹고 자란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성폭력을 일상으로 당연시하거나 즐기기까지 하는 기반이 되었다. 괴물 몇몇만이 가지는 폭력성 따위가 아니다.

한국의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는 149개국 중 115위(세계경제포럼, 2018)이며,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OECD 29개국 중 29위로 7년째 꼴찌(이코노미스트, 2019)다. 또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51명)로 193개국 중 120위(국제의원연맹, 2018년 12월 기준)이며 중앙행정기관 소속 정부위원회 여성비율을 40%로 의무화하고 있으나, 43개 기관 중 모든 개별 정부위원회의 법정기준(40%)을 지킨 기관은 단 10개뿐이다.

얼마 전 뉴스에 KB국민은행은 합격자 성비를 남성 4대 여성 1로 정해놓고 ‘여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남성지원자 수백 명의 점수를 높게 준 사실이 드러났으며, 작년에 공기업인 한국가스안전공사 및 한국석탄공사도 점수 조작으로 합격권 여성을 탈락시키기도 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정책이 ‘여성발전’이라는 발전론적 접근에서 벗어나 성별개발지수와 성별권한지수, 성별격차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

이번에 정부는 성 평등 임원 임명 5개년 계획을 추진한다는 발표를 했다. 앞으로 공공기관은 5년 동안 여성 임원을 얼마나 임명할지 목표를 수립해 해마다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공공기관 여성 고위직 비율을 단기가 아닌 중장기 관리하며 ‘유리천장’을 깨겠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5년 후면 유리천장지수가 OECD 29개국 중 꼴찌는 면하게 될까. 요즈음 여성차별과 폭력, 부정의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에 동참하는 남성들의 변화를 보면서 20위 안에 들 수 있지 않을까 큰 기대를 해 본다. 그 전에 지금 당장 ‘우리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느냐’라는 말은 그만 하길.이승연 소우주 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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