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나의 대구FC 직관기

  • 박재일
  • |
  • 입력 2019-04-24   |  발행일 2019-04-24 제31면   |  수정 2019-04-24
[박재일 칼럼] 나의 대구FC 직관기

나른한 토요일 오후. 모처럼 일체의 스케줄이 없는 나는 한장의 티켓을 거머쥐었다. 대구FC 홈경기다. 학창시절 선수는 아니어도 하루 종일 축구공을 차보았던 추억이 있는, 차범근에서 손흥민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 평균 이상의 축구 애착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나는 요즘 떴다는 대구FC 축구, 그것도 신축한 DGB대구은행파크 전용구장에서 직관해야 한다는 열망을 며칠째 담고 있었다. 별로 되는 것도 없다는 대구에 감격할 일이 생긴 것으로 나는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3호선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모노레일 차창으로 봄날 햇빛을 머금은 성당이 그렇게 이국적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도심의 건물들이 발 아래로 지나간다. 북구청 역에 내려 생수를 사는데 슈퍼주인이 했던 말, ‘나이도 드신 듯 한데 축구장 가시나요. 대단하시네요’. 하얀 내 머리카락을 보고 지레짐작 던진 그 말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경기장 가는 길이었다.

축구장 외곽을 한바퀴 둘러보며 대구 명물이 된 건축 눈요기를 한 나는 드디어 DGB파크로 들어섰다. 대구FC의 경제적·정신적 후원단체로 K리그 문화를 몇단계 끌어올렸다는 대구FC엔젤클럽 회원들이 찾는 관중석이다. 싱그러운 잔디는 매끈하게 빼서 올린 철재 기둥의 지붕을 올려보며 아주 가까이 다소곳이 깔려 있다. 지붕은 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가 주장해 100억원을 더 들여 관철했다는데 후회없는 투자란 평가다. 북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그곳은 이미 상대의 전사들이 모였다. 명문구단이자 한때는 대구FC가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포항 스틸러스 응원단이다. ‘우리는 포항이다’는 팻말이 유난하다.

휘슬은 울렸다. 숨소리도 들린다는 전용구장은 눈앞에 다가온 선수의 덩치를 볼록렌즈처럼 확대한다. 어마어마했다. 대구의 공격수와 부딪친 포항의 5번 하창래 몸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결코 TV에서는 구현불가 입체감이다. 그러고 보니 포항의 왼쪽 풀백 블라단의 체격도 육중하다. 포항은 그렇게 수비진용을 짰다. 쉽지 않을 경기라 걱정했지만 뚜껑을 여니 대구FC의 돌풍은 허상이 아니다. 세징야의 순간 회전에다 찌르는 전진 패스는 그가 왜 현재 K리그 최고의 선수인지를 입증한다. 김대원의 사방 시야에다 순발력도 인상적이다. 몇번의 공격 끝에 첫골이 터지고, 이 구장의 자랑이 된 알루미늄 바닥에 정신없이 ‘쿵쿵 골’을 외치다 보니 전반에만 3-0. 골은 세징야도 김대원도 아닌 선수들이 다 넣었다. 대구의 저력이다. 다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포항 스틸러스 응원단은 풀이 죽은 내심을 위장하듯 ‘너의 골을 보여줘’라고 외친다. 그들은 어쩌면 승패불문, 응원만 할 것 같았다. 깊은 응원의 맛은 포항이 아직은 우위다.

후반전은 루스했다. 축구에 3-0이면 원래 집중하기 어렵다. 멀리 골대 뒤 FC응원단의 대형 플래카드가 이제사 눈에 들어온다. ‘대구라는 자부심.’ 오래전 내가 썼던 칼럼 제목 ‘대구의 자부심’이 떠오른다. 칼럼은 이랬다. ‘도대체가 대구 사람은 외지에서 온 이들에게조차 우리를 비하한다. 먹을 것 없어요, 볼 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술이나 한잔해요. 대구, 되는 게 없어요.’ 나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전세계 여느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동서로 23㎞나 뻗은 10차로 달구벌대로, 도심을 감싸는 앞산·팔공산·비슬산, 신천·금호강에 2천년 역사의 달성토성,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심장 ‘삼성’의 탄생지, 한때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정치사상의 근거지…. 격하해선 안될 대구의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대구시민 힘내라는 헌사였다.

경기후 별도 세리머니가 있었다. 김진혁이 군대를 간단다. 지난 3일 인천전에서 바이시클 골을 성공시켰고, 이날도 골을 넣은 그는 ‘군인 프로팀’ 상무로 전출간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로 그의 앞길을 축원하는데 눈물이 찔끔한다.

아쉽지만 다들 빠져나가길래 나도 따라 나왔다. 선수 버스를 기다리는 열성팬들을 뒤로 하고 걸었다. 이번에는 12분이면 된다는 대구역쪽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꺼번에 온다는데. 대구 축구가 ‘미래 대구 대박’을 예언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we are daegu’란 경기장 표어가 떠올랐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