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압생트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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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4   |  발행일 2019-04-24 제31면   |  수정 2019-04-24

스위스가 만든 유명한 독주 ‘압생트(Absinthe)’는 유럽의 화가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알코올 도수가 68∼70도에 이르는 아주 독한 술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술을 마시고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약쑥·아로니아·허브 등의 원료로 만들어졌고 이전에는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다는 지적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판매 금지가 됐다고 한다. 지금은 환각 유발 성분을 제거해서 판매금지가 풀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친하게 지내는 화가 한분이 저녁 식사때 이 술을 가져와 마셔본 적이 있다. 너무 독해서 그냥 살짝 맛만 봤는데 향이 엄청 강했다. ‘그린 몬스터’라는 별칭과 악마의 얼굴이 그려진 술병이 이 술의 대단한 위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에메랄드빛 그린의 유혹, 녹색의 광기, 그린 페어리(녹색 요정) 등의 별칭도 가지고 있다. 스위스에서 처음엔 해열제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프랑스 등 유럽에서 유행하면서 예술가들 사이에서 ‘낭만과 열정을 촉발하는 술’로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르누아르·마네·고흐·피카소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도 자주 이 술병과 술잔속 술이 등장한다.

나는 양주를 비롯한 독주는 ‘독극물’로 규정, 거의 안 마신다. 젊었을 때는 호기롭게 마셨지만 해롭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한 지 10년이 넘었다. 집에 있던 발렌타인 17년·21년 등 양주들도 오래전 대부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줘 버렸다. 술을 오래 마시다보니 선현들이 지적한 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인 양 다가온다. 신봉하는 대목을 소개하면, ‘찬 술은 위를 상하게 하고(冷酒傷胃), 독한 술은 간을 망가뜨리며(毒酒傷肝), 그렇다고 해서 술을 아예 안 마시면 마음 상한다(無酒傷心)’ 이런 것들이다.

술은 적당하게 마시면 이롭다. 내가 ‘영혼각성제’라고 부르듯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왕 술을 마실 요량이라면 몸에 생채기를 덜 내도록 만들어서 마시는 게 좋을 듯하다. 성질이 아주 차가운 맥주에다 성질은 따뜻하지만 텁텁한 막걸리를 섞어 마시면 상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음식점에서 주변을 자세히 관찰해 보시라. 이런 식으로 자가 제조한 혼합주를 마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에도 압생트보다 좋은 술들이 많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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