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복지시설·간부, 유죄 인정 무시·근무하는 비리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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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3   |  발행일 2019-04-23 제31면   |  수정 2019-04-23

대구 서구 한 복지재단 소속 간부가 범죄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받았음에도 계속 근무 중이라고 한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고, 지금까지 그러한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면 참으로 기가 막힌 복지현실이다. 재판을 통해 무죄를 주장한다하더라도 복지시설에서 손을 뗀 채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서 절차를 진행해야 증거 인멸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게 상식이다.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그는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부터 지난 2월7일 약식명령(벌금)을 받았다. 약식명령은 재판 없이 벌금·과태료 등의 처분을 하는 절차이지만 엄연히 혐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유죄 인정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시설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사회적 비리불감증을 방증하는 반 사회적 행태로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

무엇보다 복지시설이 자체 근무 기준을 갖추지 못한 게 문제다. 국비를 지원받는 기관이 검찰의 유죄 인정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를 계속 근무하게 한 것은 법 이전에 상식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범죄 혐의를 받는 개인은 직무에서 배제돼야 격리를 통한 내부 고발자 보호 등은 물론 추가 비리의 위험성 차단 차원에서 당연하다. 복지시설은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무죄 추정이라는 개인 권익 보호 차원보다는 타자와 공공의 법익 보호라는 원칙에 우선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해당 시설을 관할하는 서구청이 항소와 그에 따라 남은 재판절차 등을 이유로 아무런 행정제재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것도 법적·행정적 기준 미비로 빚어진 관리·감독 소홀이거나 직무유기다. 복지시설과 행정기관 공히 이번 기회에 비리 혐의자에 대한 처분 기준을 마련하기 바란다. 우선 복지기관은 수사와 재판, 판결 등 사법 처리 전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과 결과에 상응한 근신, 정직, 해고 등의 세부 직무기준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행정기관도 사후 뒷북 대응에서 벗어나 사례별 처분 형태를 세분화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지비리 만연과 그로 인한 비리 불감증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복지 비리에 대한 법적·사회적 처벌도 강력하고 엄정해져야 한다. 인권 유린과 황령 등의 의혹만 받아도 일단 현장 근무에서 배제시키는 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준용할 만하다. ‘재수 없어서 걸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데 왜 나만 문제 삼느냐’는 등 비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단 불감증은 항용 씁쓰레하지만 놀랍기 짝이 없고, 이러한 왜곡된 현주소를 확실하게 바꾸지 않으면 복지 선진국은 백년하청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터이다. 비위·비리 행위가 명백하게 가려지고 판정난 뒤에 이뤄지는 행정조치는 항상 사후약방문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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