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코미디언 대통령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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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3   |  발행일 2019-04-23 제31면   |  수정 2019-04-23

한때 우리에게도 코미디언 정치인이 있었다. 고(故) 이주일(본명 정주일·2002년 작고)이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1980년대 TV출연에 이런저런 눈치를 봤다는데, 이후 그게 더 자산이 되어 스타가 됐다. 그는 실제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던 듯 1992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딱 4년간 국회의원을 한 뒤 남긴 그의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국회에서는 모조리 코미디를 하는 바람에 내가 할 일이 없었다.”

느닷없는 이주일 얘기는 외신을 타고 온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가 당선됐단다. 결선투표에서 현직 대통령 포로셴코에게 3배 가까운 득표차로 이겼다. 유대인인 젤렌스키는 몇년전 ‘국민의 종’이란 드라마에서 교사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역할을 맡아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는데, 이번엔 드라마 주인공처럼 실제 대통령이 돼버렸다.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배출하는 나라라면 태평성대일지도 모른다. 정치수준이 행여 우리보다 나은가 하는 짐작도 없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우리 정치는 만만치 않다. 탄핵된 대통령이 옥중에 있고, 또다른 대통령은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코미디처럼 진영의 행동방식도 바뀌었다. 직전 집권세력은 이제 야당이 되어 청와대로 행진한다. 보수 진보가 아닌 우와 좌의 극한 대립마저 횡행할 조짐이다. 여기다 핵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로부터 오지랖 넓은 행동 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듣는 상황이다. 복잡하다.

한국인이라면 결코 우크라이나에 대해 아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성 싶다. 농촌에서도 ‘김태희급 미인’이 즐비하다고 농담을 즐기는 정도랄까. 태평성대일 것으로 짐작한 우크라이나의 이런저런 내막과 정치현실을 더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다. 옛 소련이 망하자 우크라이나가 소유했던 핵무기는 러시아로 회수당한다. 몇년 전에는 푸틴의 군대가 침공해 흑해 연안 영토인 크림반도마저 뺏어갔다. 동쪽 영토에는 러시아에 붙으려는 저항세력들이 진치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당선된 젤렌스키도 현 대통령의 라이벌이자 금융재벌로 이스라엘에 망명 중인 콜로모이스키가 배후에 있다는 관측이 있다. 아마 조금 더 공부하면 우크라이나 정치도 코미디처럼 웃을 수 없고 머리가 아플지도 모르겠다. 지구상의 그 모든 정치는 결코 간단치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박재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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