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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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34면   |  수정 2019-03-2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문시장의 낮과 밤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평화시장 닭발의 새로운 버전으로 보이는 ‘뼈없는닭발’ 도시락.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국수골목의 건진국수는 미지근한 게 특징이다.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삼겹살을 말아 만든 해물삼겹순대.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대만에서 인기가 좋은 목걸이형 봉지맥주가 드디어 서문야시장에 상륙했다.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개다방’의 특미인 반려견을 위한 수제 간식.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서남빌딩 뒤편 국수골목 내 최고령 칼국숫집이 된 ‘합천할매칼국수’의 2대 사장 강병태씨.
매콤한 유혹 ‘뼈없는 닭발’ 신개념 ‘촌놈 탕슉’ 전설의 ‘할매표 칼국수’ 엄지 척
칼국수 노점존

아래를 내려보며 사진촬영을 시작했다. 대로의 남과 북은 칠흑의 어둠에 빠져 있다. 2천500여명의 인파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동~서 구간만은 달랐다. 부스에서 새어나온 불빛의 대열은 화산에서 방금 흘러나온 기다란 용암의 궤적같았다. 검푸른 밤의 야시장을 둘로 갈라놓은 ‘서문시장판 모세의 기적’이랄까.

젊은 커플들의 자태는 식감을 돌게 만든다. 서로 먹여주며 연신 깔깔대며 웃는다. 외국인이 먹는 광경은 더 먹음직스럽다. 그들은 앉는 것보다 걸어다니며 먹는 걸 더 좋아한다. 음식 맛이 궁금할 수밖에. 그래서 먹고싶은 걸 먹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넌지시 “얼마나 맛있냐”고 묻는다. ‘엄지 척!’ 하면 단번에 해당 부스라인에 줄을 선다.

구입한 음식을 느긋하게 앉아 먹을 수 있게 부스 맞은편에 텐트로 시식존을 설치해놓았다. 부스 남쪽에 있는 건어물 가판대도 밤에는 요긴하게 활용된다. 다들 비어있어 거기 앉아 음식을 먹어도 된다. 요즘 대만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봉지맥주’도 상륙했다. 야시장 한복판 노점존으로 오면 된다. 2천500원을 내면 봉다리맥주에 끈을 달아 목에 매달아 준다.

여기에 진출하려는 청년백수가 엄청 많다. 초창기 공모경쟁률은 10대 1. 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16년 6월3일 야심차게 출범을 했지만 그해 12월 4지구가 화마로 폭삭 내려앉았다. 3개월 야시장이 동면에 들어간다. 재차 2017년 3월3일 심기일전하고 재개장했는데 더 대박이 났다. 자정까지 오픈되는 주말에는 무려 20여만명이 들이닥쳤다. 대구시는 2017년 5월22일 ‘서문시장 야시장이 인터넷 블로그, 카페, 뉴스, 커뮤니티 등과 같은 SNS상의 점유율에서 대만, 홍콩, 도쿄, 태국 등 세계적인 유명 야시장을 제치고 최고로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요즘도 주말 방문객은 얼추 10여만명, 평일도 수만명이 몰려든다. 갈수록 부산의 야시장은 지고 서문야시장은 방천시장 김광석길과 함께 지역의 양대 핫플레이스로 각광받는다.

동쪽1문 근처에 있는 ‘뼈없는 닭발’ 주인 손국원씨를 만났다. 적당하게 매콤하고 적당하게 부드러워 밥을 곁들이면 6천원짜리 1인분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다. 경산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그는 영남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대구는 막창과 치맥의 도시. 그래서 제대로 된 닭발시대를 열고 싶었단다. 이벤트 회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현재 올해 4회를 맞고 있는 청년대구로힙합페스티벌 총괄 대표로도 활동한다. 중구 삼덕동 청아람아파트 앞에서 ‘나오이피자’를 운영하는 친구 서성원은 그의 동업자.

김동현 사장이 꾸려가는 ‘촌놈탕슉’은 돼지고기 등심을 길게 튀긴 신개념 탕수육이다. 6년간 음식주방장 시대를 야시장에서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영남대를 나온 이영건 사장. 그는 ‘차돌박이 야키소바’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다소 짠 일본 현지 차돌박이 요리를 서문시장버전으로 심심하게 버무려 성공했다. 이 사장은 원래 사회복지사 출신이고 아내는 간호사 출신이다.

이밖에 봉모양으로 만든 ‘찌나케이크’의 별별 마카롱도 맛이 재밌다. 수제 머랭쿠키와 조개모양의 마카롱인 조개롱으로 자릴 잡은 ‘캉카롱’은 동생 김은경, 언니 보민씨가 환상의 콤비로 화폐를 불려나가고 있다. 올해 야시장 3년차 상인이 된 ‘미대생 스테이크’ 사장은 계명대 미대를 졸업했다. 2015년 달서구 감삼동에서 ‘미대생주방’으로 경험을 쌓고 여기로 진출했다. 여기선 토시살을 찹스테이크처럼 잘라내 부탄토치로 익혀 낸다.

4대 셀러상인회장인 정진훈 사장. 그는 ‘홍콩육포’를 팔고 있다. 여느 육포와 달리 수제로 만들어 아주 부드러운 육포 시대를 열었다. 그가 청년상인들의 처지를 소상히 알려준다.

현재 셀러들은 매월 관리비 명목으로 60만원을 내야 한다. 도료점령료, 매대보관료, 쓰레기수거비, 용역업체 인건비, 공동조리실사용료 등이 포함돼 있다. 밤 11시30분이면 전을 걷고 15분간 지정된 장소로 부스를 옮겨야 된다. 셀러의 연령대는 20~50대. 3년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셀러는 30여명.

SNS 점유율 세계유명 야시장 중 최고
주말 10만여명…김광석길과 양대 핫플

대만서 온 목에 걸고 마시는 봉지맥주
심심하게 버무린 차돌박이 야키소바
별난맛 마카롱·수제로 만든 홍콩육포
미대생 사장의 부탄토치로 익힌 토시살

시장 1호 별미, 칼국수·호떡·보리밥
골목 다닥다닥 붙어앉은 칼국수노점존
1·4지구 남북간 도로존에 가장 밀집

한평생 장터와 한몸 ‘할매표 칼국수’
노점가 터주 칼제비 주도 ‘공주할매’
국수 골목 최장수 국숫집 ‘합천할매’
밀가루 20㎏ 면발 내려 9천900번 칼질

◆서문시장 칼국수를 찾아서

동쪽에 3개, 남쪽에 2개, 서쪽에 3개 그리고 북쪽에 1개의 대형 입구를 가진 서문시장. 상인의 권익은 주차타워 1층에 입주한 서문시장상가연합회가 책임지고 있다. 서문시장의 매력은 빌딩 상인 못지않게 시장 도로에 있는 노점에 짙게 묻어 있다. 이들 노점상은 오래 불법장사를 했다. 툭하면 단속반이 시장에 들이쳤다. 그들이 사라지면 다시 자리를 폈다. 그렇게 지켜온 자리다. 이젠 오랜 갈등이 다 끝났다. 자기 구역별로 일련번호를 부여받아 떳떳하게 장사한다.

서문시장의 1호 별미는 뭘까? 다들 칼국수, 호떡, 보리밥 등을 든다. 그중 칼국수가 단연 개체수가 가장 많다. 칼국숫집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점형. 그리고 대신동 예전 금은방도로변에 있는 서남빌딩 뒷골목에 다닥다닥 들어앉아 있는 20여 골목칼국숫집이 있다. 칼국수만 취급하는 가게가 얼추 100개에 달한다.

서문칼국수촌은 여러 곳에 분산돼 있다. 서남빌딩골목존, 동산상가 남쪽입구 도로변, 1지구와 불탄 4지구 사이, 닭전골목 등이다. 노점칼국수가 가장 밀집돼 있는 곳은 약초골목과 이어지는 1지구와 4지구 남북 간 도로존이다. 여보, 대명, 거창, 재연이, 중앙, 또순이, 옛날엄마, 성주, 정성, 7번, 기훈이네, 원조손수제비, 화성, 방글이, 하니, 그리고 육교 계단 아래 포진한 2곳의 문패 없는 ‘계단밑칼국수집’이 모여 있다. 이 거리는 원래 양말, 아동복, 속옷 등을 파는 노점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직후 폐업하는 노점이 늘었고 그 자리를 파고든 게 칼국수노점 할매들이다.

◆할매표 칼국수 4인방

장터에서 한평생을 바친 전설의 칼국수 할매는 4명. 서문시장에선 젊은 아낙네는 명함을 못 내민다. 그들이 끓인 칼국수는 설령 맛이 있어도 말석으로 내밀린다. ‘할매가 끓인 것에 비해 왠지 맛이 없을 것 같다’는 편견 탓이다. 그래서 그런지 칼국수 주인의 평균 연령은 예순 후반을 훌쩍 넘어선다. 여기 할매는 다들 이름이 없다. 그리고 제주해녀 못지않게 기질이 드세다. 이름을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고된 장터살이. 너무 험악스러워 부모가 준 귀한 이름을 굳이 앞세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동쪽 제1문 근처 동산상가 남쪽 도로변 노점가에선 ‘터주 칼국수할매’로 불리는 경남 삼천포 출신의 ‘공주할매’가 있다. 올해 74세. 푸드블로거 사이에도 유명해진 그 할매가 서문시장에 나타난 건 38년 전. 계성학교 앞 도로에서 노점을 시작해 훗날 칼국수에 수제비를 합친 ‘칼제비’를 주도한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제 칼제비는 서문시장의 명물음식이 돼 버렸다. 그녀보다 더 앞선 두 명의 선배 할매가 있다. 그 중 한 할매는 1지구 도로 육교 남쪽 계단밑을 고수한다. 그 할매는 백전노장이다. 장터에서 인간이 겪어야 될 모든 설움을 다 겪었다. 가족 때문이다. 눈매는 조선낫보다 더 날카롭다. 할매는 간판도 싫다. 언론도 싫어한다. 그건 오직 제대로 된 칼국수빚기에 대한 여망 때문인 것 같다. 할매가 돌아가시면 누가 저 카랑카랑한 내공을 이어받을까?

◆국수골목

서문시장 국수문화의 신지평을 연 또 한 명의 할매가 서남빌딩 뒤편 국수골목에 있었다. 서남빌딩 뒤편 약초골목으로 이어지는 ‘국수골목’의 터주로 불리는 ‘왕근이’다. 1965년에 문을 열었다. 원래 이 골목은 가방골목이었다. 왕근이가 들어서면서 점차 칼국수골목으로 발전하게 된다. 현재는 일을 그만두고 울산에 살고 있는 여든셋의 이차선 할매의 가업은 아들 하유호씨한테로 넘어갔다. 지금은 그 골목에 없다. 주차공간이 마땅찮아 북구 국우터널에서 운암지 방향 칠곡 3지구 도로변으로 이전했다.

왕근이가 떠나가버려 현재 이 골목 최장수 국숫집이 된 ‘합천할매’. 올해 89세의 방점이 할매의 피와 땀이 고여있다.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이제는 합천댐에 수몰된 거기서 태어난 할매는 1969년 이 골목에서 홍두깨로 직접 밀어 국수를 끓여 팔았다. 그 무렵 달성군 다사읍 동곡리 동곡막걸리 맞은편 장터에서는 ‘동곡할매칼국수(강신조 할매)’, 그리고 대백 남쪽 골목 안에서 ‘경주할매칼국수(황금연 할매)’가 대구 첫 할매칼국수시대를 연다. 합천 할매의 가업은 올해 72세의 아들 강병태씨에 이어 5년전 그 아들 강민호씨(31)한테로 이어졌다. 이 가게의 면은 중력분에 콩가루, 식용유, 멸치육수 등을 넣고 만든다. 20㎏ 밀가루 한 포대를 면발로 만들려면 무려 9천900번의 칼질이 필요하단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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