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하)-고군산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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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2   |  발행일 2019-02-22 제37면   |  수정 2019-02-22
섬과 섬 사이 초승달 같은 모래사장, 사구 너머 쌍봉바위 눈물‘망주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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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해수욕장과 망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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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 낙조대 오르는 길. 멀리 보이는 정자가 낙조대다. 밤이면 장자어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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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 마을. 인구 70여 명의 아주 작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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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대장도 대장봉을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무산십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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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에서 본 선유봉과 장자대교. 멀리 망주봉까지 조망된다.

수면을 긁으며 기막힌 솜씨로 하늘을 난다고 느끼면서, 머리는 다만 잠시 이 거대한 것에 반대하던 이들의 몸짓과 노래를 생각했다. 새만금방조제, 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에서 가장 긴 제방. 길의 왼쪽은 가두어진 바다다. 로마의 황제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줄 만한 현대의 건축술이다. 십자군과 같은 가로등들의 행렬을 따라 씩씩하게 군도(群島)로 향한다. 제방의 소실점에서부터 섬들의 무리가 좌우로 흩어진다.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크고 작은 섬
고군산대교 올라 산·섬 무리 가로질러
군도의 중심, 신선이 노닐었던 선유도
힘센 장사·인재 배출, 중심어장 장자도
파도위 12개 섬이 춤추는 무산십이봉
무리지어 따라오는 8가지 절경에 빠져


◆섬들을 잇는 고군산로

군산 비응항을 출발한 새만금길의 첫 기착지는 작은 야미도다. 옛날에는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 밤섬이라 했다. 이후 ‘밤(栗)’은 ‘야(夜)’가 되었고, 맛있는 밤이라 하여 ‘미(味)’가 더해졌다. 지금은 아름다울 ‘미(美)’를 붙이기도 한다. 새만금로에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야미도는 모른 채 스치기 쉽다. 눈 깜짝할 사이 멀어지는 이름을 한번 불러본다. 야미.

곧 신시도(新侍島)다. ‘새로운 것을 모시는 섬’, 새만금방조제 한가운데 있는 기둥 같은 섬이다. 여기서 새만금길은 남쪽 부안으로 보내고, 이제 고군산로로 빠져나간다. 신시도 최고봉인 월영봉(月影峰) 아래를 지난다. 단풍으로 유명한 월영봉은 고운 최치원이 단을 쌓고 글을 읽었다는 곳이다. 그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고 전해진다. 신시도 북쪽에는 섬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대각산(大角山)이 솟아 있다. 맑은 날에는 중국이 보이고, 가만 귀 기울이면 중국 닭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한다.

신시도를 가로질러 고군산대교에 오른다. 하나의 기둥을 가진 현수교다. 돛 모양의 주탑에 4천개가 넘는 케이블이 매달려 있다. 팽팽한 긴장을 감춘 의연한 표정의 현 속을 악사처럼 달린다. 군산(群山)은 산의 무리, 군도(群島)는 섬의 무리, 고군산대교에서 군산군도의 모습은 확연하다. 고군산군도는 47개의 무인도와 10개 유인도의 집합체라 한다. 크고 작은 무수한 섬이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다. 다리는 사뿐히 무녀도(巫女島)에 걸쳐있다. 쥐똥섬, 똥섬, 무능도, 닭섬 등을 먼 눈으로 훑으며 선유대교를 건넌다.

◆군도의 중심 선유도

선유도(仙遊島)는 신선이 놀았다는 섬, 고군산군도의 중심이다. 섬의 본래 이름은 군산도(群山島)였다. 고려시대에는 수군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다. 군산도는 외국에서 고려를 방문하는 사신단의 배나 무역선 그리고 우리나라의 세곡선이 반드시 들르는 섬이었다고 한다. 조선 태종 때는 수군만호영이 설치되었다. 그러자 왜구들은 군산도를 우회하여 금강 인근에 상륙해 노략질을 일삼게 된다. 이에 세종대왕은 수군 진영을 진포(鎭浦, 현 군산)로 옮긴다. 이렇게 진포는 군산진이 되었고, 군산도는 옛(古) 군산이 되었다. 선유도에 고군산군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있다.

초승달 같은 모래사장이 섬과 섬 사이에 떠있다. 모래사장은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라 불리는 천연 해안사구다. 모래언덕의 마루금이 단단한 등줄기가 되어 이편과 저편을 하나로 묶는다. 횟집과 숙박업소 등이 빼곡한 이편의 섬은 선유 2구 진리. 옛날 진터가 있는 선유도의 중심이다. 사구 너머 저편은 선유 3구다. 해안에 망주봉(望主峰)이 쌍봉으로 서있다. 젊은 부부가 천년왕국을 다스릴 임금님을 기다리다 바위산이 되었다고도 하고, 섬에 유배된 선비가 저 바위산에 올라 한양을 향해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도 한다. 망주봉 주변에는 왕이 임시로 머물던 숭산행궁과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오룡묘 등이 있었다. 여름날 큰 비가 내리면 7~8개의 물줄기가 망주봉을 타고 눈물처럼 쏟아져 내리고, 망주봉 앞바다에 물이 가득차면 하얀 모래톱이 기러기 모양으로 스윽 솟는다. 모래톱에 자라고 있었다는 팽나무 고목 한 그루는 2005년경 사라졌다.

◆고군산군도 8경

고군산로의 종점은 장자도(壯子島)다.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는 장자도는 선유도, 대장도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인구 70여 명의 아주 작은 섬이지만 ‘장자도에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많은 인물이 배출된 섬이라 한다. 또한 일제가 1917년 어청도 어업조합을 설립한 이후 1919년 두 번째로 이곳에 고군산군도 어업조합을 만들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섬이었다. 장자도 낙조대에 오르면 서해가 끝없다. 뒤돌아보면 선유봉이 지척이고, 멀리 망주봉까지 보인다. 선두에 선 기수(旗手) 몸이 단단해진다.

고군산군도에는 이름난 8가지 절경이 있다. 해질녘의 선유낙조(仙遊落照), 선유도의 명사십리(明沙十里), 망주봉의 눈물 망주폭포(望主瀑布), 기러기 모양의 모래톱인 평사낙안(平沙落雁), 주변에 있는 12개의 섬들이 파도 위에서 춤춘다는 무산십이봉(舞(혹은無)山十二峰), 신시도 월영봉의 월영단풍(月影丹楓), 선유도 앞 3개 섬의 모습이 만선의 돛단배가 들어오는 것 같다는 삼도귀범(三島歸帆), 그리고 장자도 앞바다에서 밤에 고기 잡는 어선들의 불빛을 이르는 장자어화(壯子漁火)가 그것이다. 기다려야 한다. 짧게는 하루를, 길게는 평생을. 저녁을, 만조를, 파도를, 여름의 비를, 가을을, 배들의 출항과 귀항을. 바다 또한 반듯한 어장을 품고 오래오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그리운 것은 장자어화였으나, 어둠을 기다리지 못하고 출항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난다. 좌우로 흩어졌던 섬들이 무리지어 등 뒤를 따라온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에서 장수, 전주방향으로 간다. 전주에서 군산~전주 간 자동차 전용도로인 21번 국도를 타고 군산국가산업단지로 간다. 산업단지 끝 비응항에서부터 새만금길을 따라 고군산군도로 들어가면 된다. 대구서부정류장에서 군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7번 버스를 타고 비응항에서 99번 버스로 환승하면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로 갈 수 있다. 매주 토, 일요일 운행하는 군산시티투어를 이용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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