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악과 거짓이 보편화된 위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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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6   |  발행일 2019-02-16 제23면   |  수정 2019-02-16
[토요단상] 악과 거짓이 보편화된 위험 사회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방송이 끝나도 식을 줄 모르는 드라마 ‘SKY캐슬’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처음 ‘SKY캐슬’이 시작되었을 때, 2012년에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한 드라마 ‘아내의 자격’이 떠올랐다. ‘아내의 자격’에서도 사교육문제(초등학생), 시험문제 유출 사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직장 내 성추행, 불륜·외도로 인한 이중 결혼생활, 이혼, 부의 격차, 위선, 배신 등의 문제를 다 보여주려 하였다. 당시에도 꽤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 그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하고 관심 있게 본 기억이 난다. 약 6년이 지난 2018년의 ‘SKY캐슬’에서도 입시 사교육 문제(고등학생), 시험문제 유출 사건, 자살, 신분 위장, 대학 입학 사기, 혼외자녀, 출생의 비밀, 부의 격차, 위선, 거짓말, 복수 등 주제가 반은 겹친다.

그런데 ‘SKY캐슬’에서는 ‘아내의 자격’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과격해졌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흔치 않은 총기자살 사건에서부터 시작해 또 다른 자살자, 살인,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 사건 등 사망자가 속출했다. 사망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 그것에 동조해서 일을 도모한 사람, 알면서도 묵인한 사람 등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하여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 한 사람의 삐뚤어진 욕망으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인생이 뒤틀리고, 여러 가정이 파괴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 어마어마한 사건이 어느 순간 평범하게 느껴져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되어 화들짝 놀라곤 했다. 두 드라마를 놓고 볼 때, 6년 전에 비해 사회적 사건의 위험 수위가 높아져 갔고,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이 그 위험의 강도를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으로 볼 때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한국 사회를 ‘위험 사회’로 진단한 것을 더욱 심각하게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SKY캐슬’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중학생이 편의점에서 과자를 훔치고, 그 과자를 짓밟으면서 노는 장면, 편의점에서 몰래 물건을 훔치는 일을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하는 아이들, 너도 나쁜 짓 하니까 나도 나쁜 짓 한다는 식으로 나쁜 짓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함께 물건 훔치는 일에 가담하는 아이들, 이 일에 가담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받을까봐 어쩔 수 없이 물건 훔치는 일에 가담하는 아이들, 나쁜 짓을 했다고 하는 자각이 없는 아이들, 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아이들이 물건을 훔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편의점 주인, 자녀가 물건을 훔친 사실이 밝혀질까봐 편의점 주인에게 돈을 주고 눈감아 달라고 부탁하는 부모. 이 드라마에서는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냥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이 소재는 실제 절도 사건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이러한 일은 어딘가에서 하나의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타인의 약점을 악용해서 공갈 협박으로 돈을 갈취하고, 돈만 주면 범죄의식 없이 너무나도 쉽게 타인의 개인 정보를 팔아넘기는 사람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쉽게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이러한 사건은 이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악과 거짓이 보편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굳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논리를 갖고 오지 않아도 악이 이 사회에 창궐해 있음을 느낀다. 한나 아렌트는 세계 최대의 악은 권력의 명령에 따라 평범한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행하는 악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에게는 동기도 없고, 신념도, 사심도, 악마적인 의도도 없다고 했다. 특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극히 평범한 사람이야말로 거대한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악과 거짓이 번져나가지 않도록 누군가는 막고, 악과 거짓의 평범성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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