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상) - 내항과 원도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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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5   |  발행일 2019-02-15 제36면   |  수정 2019-02-15
개항후 한때 일본인 1만명 거주…광복후 폐허의 시간 뒤로 말쑥하게 단장
내항·군산선,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
최무선 진포대첩 세계 첫 선상화포戰
백년광장 근대건축관 옛 조선銀 건물
근대미술관·미즈커피·박물관 이어져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상) - 내항과 원도심
초록 지붕은 군산근대미술관, 옆으로 미즈커피,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이어지고 뒤쪽으로 장미공연장과 장미갤러리가 모여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상) - 내항과 원도심
백년광장과 군산근대건축관인 옛 조선은행 건물. 광장 가운데 항구 노역자로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 화백의 동상이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상) - 내항과 원도심
추로스가 유명하다는 여흥상회. 맞은편 붉은 담장이 신흥동 히로쓰 가옥. 바닥 돌이 이를 악물고 있다. 일대는 옛날 일본인 부자들이 살았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상) - 내항과 원도심
초원사진관과 명화극장. 초원사진관은 원래 영화촬영을 위해 지어진 세트였으나 많은 관광객이 찾자 군산시가 다시 지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군산 (상) - 내항과 원도심
군산 내항. 뜬다리 1호 좌우로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내항 네거리로.” 창밖으로 흘러가는 해망로 옛 상업지구의 모습은 폐허에 가까웠던 10년 전과 무척 달랐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남아 있던 건물들은 모두 말쑥하게 단장을 한 모습으로 조그마한 마을이라 할 정도의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들락거렸고 골목을 누볐다. 새로운 근대였다. ‘단장’에 위화감은 없었고, 광복 이후 길게 이어진 폐허의 시간은 이제 사람들의 발걸음이 드문 후미진 자리에 작은 얼룩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내항·군산선,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
최무선 진포대첩 세계 첫 선상화포戰
백년광장 근대건축관 옛 조선銀 건물
근대미술관·미즈커피·박물관 이어져

반듯한 골목마다 늘어선 상가로 빼곡
‘8월의 크리스마스’사진관 영화의 거리
카페로 변한 군산과자조합 공장부지
역사경관 회복·활용 통한 경제적 재생

◆군산내항

내항 바다는 오늘도 뻘이다. 수많은 배들이 뻘에 갇혀 밀물을 기다리고 있다. 군산 내항은 1899년 5월1일 개항했다. 1912년에는 군산선이 완공되었다. 일제강점기 내항과 군산선은 수탈의 상징이었다. 내항 일대는 장미동(藏米洞), 쌀을 쌓아둔 동네다. 내항에는 뜬다리(부잔교) 3기가 남아있다. 수위에 따라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고 다리 하나에 3천t급 배 3척을 동시에 댈 수 있었다. 항구의 물양장은 개항 100주년을 맞아 1999년에 조성한 백년광장과 군함, 전투기 등이 전시되어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다. 진포는 고려시대 군산의 이름이다. 1380년 진포대첩은 화포를 함선에서 사용한 세계 최초의 전투로 기록된다. 이 전투에서 최무선의 화포가 왜선 500척 모두를 불살랐다. 공원에는 재현된 화포들이 바다를 향해 열 지어 있다. 해양공원 뒤편에 놓여 있는 군산선 철길은 이제 신경 써서 더듬어야 겨우 찾아진다.

내항을 중심으로 한 해망로 주변에는 ‘근대 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가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관청과 은행, 상점과 창고 등이 가득한 상업의 중심으로 일본건축가들이 독일건축가들과 협업 설계한 서양식 조적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은 광복 후 각기 다양하게 용도의 변화를 거치면서 소실되거나 방치되거나 철거되었다. 2011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주변 건물들도 새롭게 단장했다.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지금 ‘군산근대미술관’이다. 옆에는 일본인 무역 회사였던 미즈상사가 ‘미즈커피’ 간판을 달고 있다. 원래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앞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뒤쪽에는 쌀 창고를 개조한 ‘장미공연장’과 원래의 용도는 알 수 없지만 한동안 위락시설로 이용되었던 건물을 변화시킨 ‘장미갤러리’ 등이 자리한다.

백년광장 옆에는 옛 조선은행 건물이 있다. 10여 년 전 ‘플레이보이’ 간판이 걸린 채 폐허로 서있던 건물은 ‘군산근대건축관’이 되었다. 큰 길을 따라 조금 가면 ‘군산 196’이라 커다랗게 쓰인 존재감 묵직한 건물 하나가 보인다. 1930년대 ‘중본(中本)상점’ 건물로 군산, 부산, 인천 등에만 그 형태가 남아있는 일본식 건물이라 한다. 개인이 인수해 처음에는 건물을 헐고 호텔을 지으려 했다가 결국 원형을 유지해 근현대사박물관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 곁에 문화센터 건물이 한 세트로 자리한다. 1층은 옥션196, 2층은 갤러리196, 3층은 카페196. 두 건물이 통칭 군산 문화복합단지 ‘해망로 196’이다. 카페테라스에서 군산 내항이 내려다보인다.

◆군산 원도심

군산 내항에서 해망로를 건너면 격자형의 주거지가 펼쳐진다. 영화동, 월명동, 신흥동 등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개항과 함께 설정되었던 조계지, 즉 치외법권의 외국인 거주 구역이었다. 군산은 내항과 조계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옛 조계지가 곧 군산의 원도심이다. 원도심권에는 한때 1만명에 가까운 일본인들이 살았고 당시 지어진 관공서, 상가, 일반 가옥 등 170여 채의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반듯반듯한 골목골목마다 카페, 사진관, 식당, 공예점 등이 빼곡하다. 1945년에 개업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빵집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이성당, 1950년대 초에 문을 열고 최근에 등록문화재가 된 중국집 빈해원, 일본식 절인 동국사, 1930년대 군산부윤 관사 등이 대표적이고, 1930년대 풍의 게스트하우스 고우당을 비롯해 10곳이 넘는 숙소가 원도심 안에 포진해 있다. 월명동에서 신흥동으로 이어지는 한 골목길은 ‘군산 영화의 거리’다. ‘8월의 크리스마스’ 무대였던 초원사진관과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의 집이었고 ‘타짜’에서는 평경장의 집이었던 신흥동 히로쓰 가옥이 정점으로 자리한다. 초원사진관 뒤편으로 5층 규모의 ‘명화극장’ 건물이 솟아 있다. 극장은 오래 사랑받다 폐관되었고 이후 교회와 커피집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높다랗게 솟은 굴뚝 하나가 흥미로워 가보니 ‘제약’이라는 글자가 희미하다. 그 앞쪽에 있는 ‘카페 1939’로 들어가 본다. 1939년에 이곳은 ‘군산과자조합’이라는 공장부지와 빵집이었다고 한다. 그 후에 제약회사가 들어왔고 6·25전쟁 때는 헌병대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젊은이들이 모여 카페를 꾸렸는데 소소하게 빵도 굽고 있다. 맛나다. 너른 창밖으로 여행 가방을 달달 끌며 걸어가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군산시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근대역사경관지역’을 선정해 원도심권의 건축물들을 단장했다. 군산시와 주민들은 사업 초기부터 군산에 남은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을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고 한다. 이제 군산 월명동 원도심 중심 거리 건물은 5층, 외곽 거리는 3층까지만 건축이 가능하다.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한 제약으로 주민들과 합의하여 2014년 도입한 사항이다. 단장은 단순한 역사경관의 회복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회복과 활용을 통한 경제적 재생이었다. 히로쓰 가옥 골목 ‘명신수퍼’에 ‘옛날 과자’가 잔뜩 쌓여 있다. 주인 할머니의 음성이 활기차다. “내가 여기서 50년을 살았지. 그 전에는 일본사람들이 오래 살았어.”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과자는 훨훨 팔렸고, 할머니의 손은 바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대구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함양에서 장수, 전주방향으로 간다. 전주에서 군산~전주 간 자동차 전용도로인 21번 국도를 타면 된다. 대구서부정류장에서 군산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박물관과 해양공원의 군함, 조선은행, 18은행 등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통합권이 성인 3천원, 청소년과 군인 2천원, 어린이 1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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