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한국당을 부탁해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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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5   |  발행일 2019-02-15 제23면   |  수정 2019-02-15
[조정래 칼럼] 한국당을 부탁해

‘황당한 웰빙단식, 국민 가슴에 대못 박는 5·18 관련 망언, 당내 정치가 실종된 불통 전당대회 강행, 꼴불견 줄서기에다 철지난 박심 논란까지….’ 권영진 대구시장이 작심하고 한국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의 형식을 빌렸지만 지방정부 행정수반으로서 이같이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평을 하는 건 이례적이다. 하지만 권 시장의 질타는 SNS의 개인적이고 가벼움을 넘어 공식적이고 묵직한 울림을 자아냈다. 한국당의 구태의연과 일부 의원들의 시대착오적 헛발질에 대한 자성의 촉구가 그만큼 시의적절했기에 ‘권 시장마저 비판하는 자유한국당, 반성해야’란 대구시당 명의의 논평‘마저’ 끌어낸 것일 터이다.

‘한국당의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당원이 아니라 일반 시민의 복장으로도 ‘참고 또 참아 왔던’ 분통에 가슴이 터진다. 도대체 한국당이 왜 이러나. 김태우·신재민 사건에 이은 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법정구속 등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와 집권여당 발 악재가 자고 나면 터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절호의 찬스에, 반사이익적 지지율도 점증해가고 있는 판국에 이 무슨 자해·해당 행위란 말인가. 민주당의 2중대가 아니라면 감히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저 헛발질과 똥볼은 또 웬말인가. 예의 웰빙이란 고질병이 도졌나. 상대가 까먹은 점수까지 최악의 자살골로 다 상쇄시켜주는 그 기술(?)이 놀랍다.

하루에 5시간반 단식, 그것도 여럿이 돌아가며 릴레이로. 과거 인기리에 방영됐던 지상파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재연할 심산이었는지 웃겨도 너무 ‘웃픈’ 한국당 아닌가. 그 정도 단식은 릴레이로 할 거 없이 일반인이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한다. ‘듣보잡’ 한국당 단식보다는 다소 긴 ‘아침만 거르거나 아침부터 점심까지’ 거르는 ‘간헐적 단식’(IF: Intermittent Fasting)이란 게 있는데, 한국당 덕에 처음 알았다.

집권 세력의 독주와 전횡, 정책의 탈선과 오류를 견제하고 감시·감독해야 할 야당 중의 제1야당이 절름발이 걸음을 자청하다가 제풀에 나가 떨어진 위기의 한국당이다. 이대로 가다간 시나브로 정부 여당의 국정파행 책임까지 대신 다 덮어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좌우 진영의 문제점에 대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보수는 영적 진공상태고 진보는 자만감의 포만상태’라고 일침했다. 이를 정치로 좁혀서 말하자면 여야 모두 지리멸렬, 자멸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얘기다. 보수재건이든 진보 장기집권 플랜이든 여야의 두 날개가 상대의 파괴를 전제로 한다면 온전한 국정 비행은 기대하기 어렵다.

근데 대구·경북 한국당 의원들은 꿀먹은 벙어리인가. 권 시장의 이번 준비된 죽비는 이렇게 한국당 지역 정치인들의 죽은 입과 가슴을 통타한다. 대표 후보들이 한국당의 최대 지분을 보유한 대구·경북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와중에 상종가를 치고 있는 TK가 아닌가. 대표의 은전에 의지해 근근이나마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는 정치적 자영업자들의 소굴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심히 저어된다.

한국당이 걱정스럽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보듯 실종된 치매 엄마를 찾는 가족들의 무기력함을 연상하면 영판 ‘한국당을 부탁해’란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질 법하다. 제각기 다른 기억을 소환해내지만 모두가 다를 게 없는 평면적인 한국당의 자화상. 입체적 성장과 발전 가능성은커녕 보수의 가치와 갈수록 멀어질 뿐이다. 그나마 한 소리했던 ‘당랑의 꿈’은 휴면에 들어간 사이, 불가항력과도 맞짱을 뜨는 ‘당랑(螳螂)’의 무모함이 오히려 더 절실한데….

용광로 보수가 아쉽고 못내 그립다. 진보까지 ‘멜팅 팟’에 녹여냈던 YS의 신한국당 시절. 지리멸렬했던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개명한 YS는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며 대쪽 총리 이미지를 벼린 이회창을 영입하고, 당시 진보정당 운동을 했던 이재오·김문수를 끌어들였다. 홍준표와 안상수 등 소장 법조인을 비롯한 개혁적인 소장파를 젊은 피로 수혈하기도 했다. 고로(高爐)에 달라붙은, 제 살 깎아먹는 정치 자영업자와 철지난 올드 보이들을 먼저 분리수거해 내는 게 급선무다. 한때 용광로였던 보수 원조의 본성과 가치를 되찾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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