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38] 충북 괴산 선유구곡(上)...높고 거대한 기암 즐비…경치에 도취된 퇴계이황 9개월간 머물러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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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4 08:31  |  수정 2021-07-06 14:48  |  발행일 2019-01-24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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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선유구곡 중 1곡인 선유동문 주변 풍경. 기암들과 넓은 못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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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곡 바위에 새겨진 ‘선유동문(仙遊洞門)’ 글씨.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문경의 선유구곡과 같은 이름의 또다른 선유구곡이 있다. 문경 가은의 선유구곡이 동(東)선유구곡이라면 이는 서(西)선유구곡이라 할 수 있다. 괴산의 이 선유구곡은 화양구곡, 쌍곡구곡과 함께 괴산의 3대구곡으로도 꼽히는 대표적 구곡이다. 화양구곡이 있는 화양계곡의 상류에 펼쳐진 이 선유구곡은 청천면 삼송리(三松里)와 송면리(松面里)에 있는 선유동계곡에 설정된 구곡이다. 이 계곡은 특히 거대한 기암들이 많은 멋진 계곡이다. 화양계곡의 상류 지역인 화양천(삼송천)을 따라 흐르는 선유동계곡은 퇴계 이황이 칠송정(현재의 송면리 송정부락)에 사는 함평이씨 이녕(李寧)을 찾아왔다가 부근의 경치에 도취되어 9개월간이나 머물면서,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의미의 ‘선유동’이라 불렀다 한다. 또 굽이마다 이름을 지어 9곡을 설정했다고 전한다. 계곡 1.6㎞ 정도에 걸쳐 있는 이 선유구곡은 1곡 선유동문, 2곡 경천벽, 3곡 학소암, 4곡 연단로, 5곡 와룡폭, 6곡 난가대, 7곡 기국암, 8곡 귀암, 9곡 은선암이다. 선유구곡이 시작되는 1곡 선유동문 앞 길가에 이 선유구곡 안내표지가 있다. 이 선유구곡도 굽이마다 그 명칭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서체는 해서와 행서, 초서 등 다양하다.

◆1곡은 선유동문(仙遊洞門)

선유구곡 초입에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을 지나 차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구곡이 시작된다. 1곡은 선유동문이다. 평지 하천이 끝나고 산속 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입구에 있다. 높고 거대한 바위들과 넓은 소가 있어 경치가 좋다.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기 좋은 곳이다.

거대한 바위들은 사람이 일부러 쌓아놓은 듯하다. 허리 부분이 잘록하여 무너질듯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맨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 넓적한 바위 앞면에 ‘선유동문(仙遊洞門)’이라는 글씨가 행서로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신선들이 살던 선유동으로 들어가는 문임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청천면 삼송∼송면리 계곡 1.6㎞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전설 간직
퇴계, 선유동이라 짓고 구곡설정
화양·쌍곡과 함께 ‘괴산 3大 구곡’



‘선유동문’ 글씨 옆에 ‘이보상서(李普祥書)’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9곡 ‘은선암(隱仙巖)’ 각자(刻字) 옆에 ‘김시찬 이보상 정술조 동주이상간 임신구월일(金時粲 李普祥 鄭述祚 洞主李尙侃 壬申九月日)’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1752년에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괴산 선유구곡을 연구한 학자(이상주)는 선유구곡 각각의 명칭을 이보상이 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위 네 사람을 선유구곡 설정자로 결론짓고, 그 주도자는 선유동 소유주인 이상간으로 판단했다.

김시찬(1700~1767)은 1751년 12월 충청도관찰사로 임명되었고, 이보상(1698~1775)은 괴산군수를 지냈다.

2곡은 경천벽(擎天壁)이다. 선유동문 맞은편 바로 위쪽에 있는 층암 절벽 바위이다. 층층암석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하다는 의미에서 경천벽이라 했으나, 그 규모가 그리 거대하지는 않다. 홍치유(洪致裕·1879~1946)는 이 경천벽을 두고 ‘푸른 절벽이 허공을 받치고 높은 기상 자랑하니, 높고 높아 미친 듯한 거센 물결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네’라고 읊었다고 한다.

3곡 학소암(鶴巢巖)은 조금 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온다. 계곡 오른쪽의 숲속에 우뚝 솟아 있는 기암이다. 숲이 우거진 계절에는 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바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깃들어 살았다고 해서 학소암이라 했다 한다.

4곡은 신선이 단약을 만들었다는 바위인 연단로(煉丹爐)이다. 길을 따라 다시 좀 더 올라가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 위쪽으로 시내 한가운데에 큰 바위 두 개가 서있다. 그 중 위가 평평한 바위가 연단로다. 연단로 바위 위에는 두 군데가 절구통처럼 파여 있다. 신선들이 이 바위에서 금단(金丹)을 만들어 먹고 장수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쪽에는 ‘연단로(煉丹爐)’가 행서로 새겨져 있고, 그 옆에 신선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인면도가 새겨져 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5곡 와룡폭(臥龍瀑)이 나온다. 은선휴게소 앞이다. 큰 폭포는 아니나 용이 누워 꿈틀대는 모양의 암반 위로 물이 흘러 내리는 곳이고, 아래는 큰 소가 형성돼 있다. 경관이 수려하다.

◆거대한 바위들이 몰려 있는 7~9곡

6곡 난가대(爛柯臺)는 암반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바로 옆에 있는 널따란 바위가 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옛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가다가, 바위 위에서 신선들이 바둑 두며 노니는 것을 구경하다가 도끼자루가 썩어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6곡 바로 위에 7곡 기국암(碁局巖), 8곡 귀암(龜巖), 9곡 은선암(隱仙巖)이 몰려 있다. 거대한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7곡 기국암은 위가 마치 일부러 깎아낸 듯이 평평한 바둑판 모양의 바위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있어 나무꾼이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5세손이 살고 있더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기국암 바로 옆의 8곡 귀암은 바위 모양이 마치 큰 거북이 머리를 들어 숨을 쉬는 듯하다. 표면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있어 거북등과 같고, 등과 배가 꿈틀거리는 듯하다. ‘귀암(龜巖)’이라는 글씨가 초서로 새겨져 있다.

9곡 은선암은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 곳이다. 바위 사이가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은선암에는 통소를 불며 달을 희롱하던 신선이 머물렀다 한다.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는 생각이 드는 분위기다. 한쪽 바위에 ‘은선암(隱仙巖)’이라는 초서 글씨와 함께 여러 사람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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