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순 원장의 정신세계] 대추 한 알이 붉어질 때까지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1-15 07:43  |  수정 2019-01-15 07:43  |  발행일 2019-01-15 제19면
‘애 같은 어른’ 마음의 문제 치료땐
대인관계 근간 구강기 애착형성 등
발달단계별 성격형성과정 관심을
[곽호순 원장의 정신세계] 대추 한 알이 붉어질 때까지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다. 작은 대추 한 알이 붉어질 때까지도 이렇게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태풍과 천둥과 땡볕들이 필요할까.

정신분석학에서는 성격형성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매우 중요시한다. 발달 단계마다 중요한 과제가 있어서 그것들을 잘 수행하여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나이는 어른이라도 ‘애 같은 어른’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어른의 마음속에는 못다 큰 아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이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고 한다. 이 아이가 유치한 수준이면 유치한 행동을 할 것이며 병적인 수준이면 병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신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이 자라지 못한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마음속의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이다.

아기는 출생과 함께 엄마의 젖을 빨아야 한다. 만약 이때 엄마의 품에서 젖을 찾지 못하면 평생을 심리적 어려움을 가질 정도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6개월이 넘어서면 낯가림이 시작되며 특히 엄마에게 애착행동을 보인다. 이 애착의 의미는 미숙한 개체가 생존을 지키려는 본능적 행동이다. 이 애착을 통해 아기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과 안정감을 찾는다. 앞으로 모든 대인관계가 이 기본적인 신뢰감을 기초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 시기를 구강기라고 한다. 이때 어떤 이유에서라도 애착이 충족되지 않아 기본적인 신뢰감 형성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면 그 아이의 삶은 늘 큰 태풍 속을 헤집듯 힘든 삶이 될 수 있다. 즉 구강기 욕구의 좌절이 너무 심해 욕구충족에 집착하는 성격을 가지게 될 수 있고 이를 ‘구강기 성격’이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나친 의존을 갈구하고 충족이 되지 않으면 우울해지거나 자책을 하며 많은 날들을 원망으로 한숨지으며 살아간다면 이를 구강기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우거나, 큰소리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쉽게 술을 먹고 취해버리거나, 음식을 쉼 없이 탐하거나, 남을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혹은 욕설을 쉽게 하는 등의 모습을 나타낸다면 이 또한 구강기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성장이 구강기에서 멈춰 서 있다는 뜻이고 삶의 태풍이나 땡볕을 잘 견뎌내지 못한 까닭이다.

구강기는 대략 한 살까지 기간으로 본다. 구강기를 벗어나면 다음 과정은 ‘항문기’로 이어지며 이 시기 또한 이루어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 이 항문기 과정에서 과제를 다 못하거나 충족이 되지 않으면 이 또한 이 시기에서 성장을 멈춘 고착이 일어나게 된다. 훗날 성인이 되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항문기 성격’이라는 독특한 모습으로 퇴행 될 수도 있다.

마음의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을 치료하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현재 증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면 옳은 치료가 될 수 없다.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해온 삶의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겪어 온 무서리 몇 밤, 땡 볕 몇 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것을 모르고는 그 사람의 현재 증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곽호순병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건강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