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정치보고서’] (하) 이념 성향 이유와 전망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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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0   |  발행일 2019-01-10 제6면   |  수정 2019-01-10
“TK보수, 촛불집회이후 분열…개혁여부따라 중도 쏠림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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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정치권에서 대구·경북은 보수의 성지 또는 심장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보수성으로만 대표되던 곳이 아니었다. 광복 전후에는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야성이 강했다. 당시 좌파 민족주의자들 중 대구 출신이 많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는 서울과 버금갈 정도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진보적인 곳이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는 민주계 정당인 신민당이 지역구 5석 중 4석을 차지했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1987년 대선을 즈음해 전국 정치권에 ‘지역감정’ 바람이 불면서 대구·경북에도 보수 색채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이후 대구·경북은 사실상 보수정당의 ‘독재’가 유지됐으나 2016년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구갑)과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진보성향의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이 당선된 것이다. 또한 문재인정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지역 정당 지지율은 오랜기간 민주당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구·경북의 정치 성향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중앙 정치권의 수식어와는 달리, 2019년 현재 대구·경북의 정치 성향은 ‘보수의 심장’이라고 단정 짓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구·경북 정치보고서 하편에서는 대구·경북 시·도민이 답한 이념 성향의 이유에 대해 분석하고, 앞으로의 지역 정치권 이념 변화를 전망해 본다.

◆개인적-정책-지지정당 순

앞서 시리즈 상편 ‘이념 성향 분석’에서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에서 대구·경북 성인 10명 중 각각 4명이 자신을 보수(42.3%) 또는 중도(41.1%)라고 밝혔다. 오차범위(±3.1%)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16.6%에 불과했다. 이는 영남일보와 리얼미터가 공동으로 지난해 12월23~24일 대구·경북 거주 만 19세 이상 남녀 1천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당시 조사에서는 해당 이념 성향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조사결과 대구·경북 시민의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항목은 ‘개인적인 성향이라서’(33.8%)였다. 즉 보수나 중도 또는 진보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이 특정한 계기라기보다 개인적인 사유라는 것이다. 지역, 연령, 성별 등 세부 항목 조사에서도 1위는 일치했다.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답한 비율은 구미·김천·칠곡 등의 ‘경북 서남권’에서 40.9%로 가장 높았으며, 대구 동구·북구가 속한 ‘대구 동북권’이 29.5%로 가장 낮았다.


보수-중도-진보 지지 이유
34%가 “개인적인 성향” 응답
16% “지지정당·정치인 때문”

향후 보수상황따라 변동 클 듯
지난 대선·地選서도 조짐보여

“환골탈태·자기성찰·반성해야
사회 변화 탄력적 대응 못하면
지역 이념구도 재편 가능성 커”



다음으로 ‘복지·국방 등 정책 성향 때문’(25.4%)을 이유로 들었다. 이어 ‘지지정당 또는 정치인 때문’(16.6%), ‘대구·경북 지역 성향 때문’(10.7%), ‘기타 또는 잘 모름’(7.3%), ‘가족·주변지인의 영향 때문’(6.2%) 순이었다. 이 같은 순위는 대부분 항목에서 비슷한 양상이었으나 2·3위를 놓고 일부 지역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포항·울진·영덕 등이 속한 ‘경북 동부해안권’의 경우 이념성향을 가진 이유로 ‘지지정당 또는 정치인 때문’(18.4%)이라는 답이 둘째로 많아 눈길을 끌었다.

답변 항목 가운데 지역 성향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답변은 안동·영주·문경·상주 등이 포함된 ‘경북 북부내륙권’이 16.2%로 가장 높았다. ‘가족·주변지인의 영향’이라는 항목의 경우 ‘경북 동부해안권’이 10.7%로, 타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념성향별 분석에서도 순위는 대부분 같았으나 일부에서 차이를 보였다. 보수·중도·진보 모두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답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진보(37.6%)와 보수(29.5%), 중도(36.7%)의 정도 차이가 있었다. 자신을 보수·중도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은 둘째로 ‘복지·국방 등 정책 때문’이라고 답했으나, 진보 성향 응답자들은 ‘지지정당 또는 정치인’(21.5%)을 둘째 이유로 꼽았다.

이에 대해 채장수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개인적이라는 이유는 사실 잘 모른다는 것이다. 적절한 근거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또 “사실 정치 이념은 철학적이고 어려운 문제다. 이를 단번에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추상적인 대답일수록 답을 찾지못한 변명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정당 개혁이 변수 될 듯

사실 이 같은 지역 이념성향은 대구·경북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흔히 국내에서 ‘보수의 영남, 진보의 호남’으로 구분되며 각 진영의 대표 정당 지지세가 뚜렷함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구·경북의 이념 성향에 대해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보수진영의 움직임에 따라 변동폭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채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 대구·경북 보수 편향층이 65% 정도라는데, 보수도 일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로는 보수의 분열을 꼽았다. 그는 “보수는 2016년 촛불집회 이후로 갈라졌다. 소위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세력과 좀 더 온건한 보수, 중도보수로 나뉜 것”이라며 “보수가 분열된 후 각자 자리잡기 위한 과정이 이뤄지는 듯 했으나 사실상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구·경북에서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보수라 할지라도 자신의 이념 성향 네이밍(이름 붙이는 것)이 곤란한 상황이 되면서 중도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우진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도 “지금까지 대구·경북은 계층이나 나이 등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20대 총선 19대 대선 그리고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부터 보수가 균열이 생긴 만큼 향후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교수는 또 “보수가 몰락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이 커졌다. 보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변화할 것”이라며 “보수의 핵심 내용이 반공주의였지만 최근의 남북대화 등 변화를 보수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변화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변화의 첫번째 계기는 21대 총선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역사적으로도 대구·경북은 개혁적이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반세기 가까이를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화 되면서 발전이 정체됐다”며 “이에 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감이 투철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 대구·경북의 정신이다. 이 같은 성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보수 정당의 모습이라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이들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우선 내년 총선 인물 공천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야 보수우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기존 정당들이 사회변화를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지역 이념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관련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치사회화와 정치성향 형성에 관한 연구’ 등 지역정치 관련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키이(V.O.Key, Jr.)는 지역의 기존 정당과 유권자의 연합구도가 변화되는 것을 ‘재편성(Realignment)’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회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쟁점이 부각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새로운 쟁점이 선거에서 부각된다면 지역 유권자들은 쟁점을 둘러싸고 ‘분열’이 이뤄지며, 이 같은 결과가 선거의 유권자 선호도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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