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천 보현산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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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4   |  발행일 2019-01-04 제36면   |  수정 2019-01-04
하늘 열리면 펼쳐지는 별세계…우주에서 타는 롤러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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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 천문대. 국내 100여 개 산 중 천체관측에 최적의 장소. 전망도 대단히 근사하다. 천문과학관과 전시체험관. 우주와 관련된 각종 체험과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다(작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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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과학관의 주관측실. 우리나라에서 아홉째로 큰 800㎜ 광학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 보현호 내부. 우주선에 앉아 우주로 날아가는 체험을 하는 곳이다. 천문과학관의 보조관측실. 터널형 돔 지붕이 열리면 개방된 옥상에 여러 대의 근사한 망원경들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마을을 지나자 산길은 엄청난 각도로 굽어지기를 반복한다. 무거운 하늘이 그 큰 얼굴을 부라리고 안온한 사람의 땅은 멀리 깊어진다. “여기서 가는 데만 30분이 걸릴 겁니다. 엄청 꼬부랑길에 결빙이 있다는 소식도 있어요. 추천하지 않아요.” 천문과학관의 직원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저 앞에 언뜻언뜻 보이는 이와 저 뒤에서 쫓아 오르는 이가 있어 이 스산한 산길의 근심은 가볍다. 게다가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들이 방벽처럼, 튼튼한 울타리처럼 촘촘히 치솟아 있으니 어서 오시라, 어여 가자, 천지가 동지 같다.

◆보현산 천문대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가 있다. 뒤이어 두어 대의 차가 도착한다. 여기서 천문대까지는 산 사면을 타고 오르는 데크 길이다. 앞서가는 아빠와 딸을 쫓으며 아름답게 휑한 숲길을 가로지른다. 길은 ‘천수누림길’, 해발 1천m 고지를 따라 주차장에서 시루봉까지 연결되어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만한 너비에 무릎의 관절통 따위는 고개 들지 못할 평온한 기울기다. 문득문득 어디선가 음악도 흘러나온다. 어린 시절 음악책으로 배운 가곡류들이다.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한 마리 검은 새가 우듬지 위의 창공을 휘휘 휘젓는다.

천문대의 건물 모서리가 보인다. 태양망원경동의 망원경돔이다. 천문대 단지로 오르면 둥근 돔 지붕을 가진 전시관과 붉은 벽의 연구동, 그리고 멀리 정상에 우뚝한 직사각형의 1.8m망원경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단한 뿔을 머리에 인 검은 염소 한 마리가 후다다다닥 전시관 뒤를 가로질러 화단의 나무 아래로 숨는다. ‘독사조심’ 안내판이 화단 앞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독사의 겨울잠을 염소도 아는 듯하다. 지금은 오후 3시경. 관람객은 생각보다 많다. 하루 한번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매일 잊는데, 하늘만 쳐다보며 사는 이곳 사람도 저 아래 세상을 매일 잊을까.


해발 1천m 고지 이어진 천수누림길
가장 먼저 만난 천문대 태양망원경동
국내 발견한 13개 별 중 12개 관측돼
거대 블랙홀이 별 삼키는 순간도 포착

정각리 별빛마을과 이웃한 천문과학관
우주비행 훈련·보현호 탑승 짜릿한 체험
누운상태로 별 속으로 가는 5D영상관
태양 흑점·홍염, 화성의 붉은면과 마주



보현산은 한국천문연구원이 국내 100여개 산의 기상 조건과 주변 불빛의 영향 등을 고려해 천체관측에 최적의 장소로 선택한 곳이다. 천문대는 1996년에 세워졌다. 우리나라가 발견한 13개의 별 중 12개가 이곳 보현산 천문대에서 관측된 것이라 한다. 2008년에는 근적외선 카메라를 개발하여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삼키는 순간을 포착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지금 두 가지의 장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로부터 지구와 가까운 공간으로 유입되는 소행성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블랙홀에 관련된 것이다.

태양망원경동에는 태양 플레어 망원경이 있다. 국내 최초의 연구용 태양관측시설인데 태양이 돌발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할 때 생기는 플레어(flare)를 감시하고 연구한다. 1.8m 광학망원경동에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동양에서 가장 큰 망원경이 있다. 1만원 지폐 뒷면에 ‘혼천의’ 오른쪽에 있는 망원경이 바로 보현산 천문대의 광학망원경이다. 실물을 보지는 못하지만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광학망원경동은 다른 시설보다 단지 몇 m 더 높은 자리에 있지만 바람의 결과 맛과 세기가 다르다. 시베리아의 북풍을 그대로 맞는 곳이라 한다. 어금니와 혀까지 얼어버린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우라늄에 가깝다. 맞은편으로 시루봉이 보인다. 그 너머 산들과 길게 그어진 구름의 층이 내가 아직 대기권 아래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제 우주로 가볼까.

◆보현산 천문과학관과 천문전시체험관

천문대 아래 보현산의 해발 300m 즈음에 천문과학관과 전시체험관이 있다. 정각리 별빛마을과 이웃해 있으며 주변에는 야영장과 글램핑장, 펜션이 있고 작은 찻집도 있다. 펜션은 하늘을 향해 20도 기운 형태다. 누워서 별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천문전시체험관에서는 우주와 관련된 각종 다양한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화성, 목성, 토성에서의 내 몸무게를 알 수 있고, 우주에서의 움직임을 게임을 통해 훈련할 수 있다. 가장 신나는 것은 우주공간 비행 훈련과 보현호 탑승. 우주공간과 실제 로켓이 발사되는 진공 등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데 대단히 짜릿하다. 곳곳에 직원들이 있고 그들은 매번 먼저 다가와 도움을 준다.

천문과학관에는 5D영상관이 있고 천체망원경을 통해 직접 별을 관측할 수 있다. 1층 로비는 전시실이다. 별과 성운, 은하, 태양과 태양계 등에 대해 안내되어 있다. 시간이 되면 영상관으로 안내된다. 돔형 천장이 우주로 펼쳐진다. 돈키호테처럼 저 속으로 나아가고 싶어진다. 우리는 누운 상태로 별들 속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은 우주에서의 롤러코스터다. 절대로 타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이렇게 예고 없이 타다니.

영상이 끝나면 직원의 인솔에 따라 2층 관측실로 오른다. 주 관측실에는 800㎜ 광학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홉째로 큰 망원경이라 한다. 관측실은 외기와 온도가 같다. 우리는 모두 쪼그려 앉아 벌벌 떨며, 웃으며 직원의 재미난 설명을 듣는다. 바로 옆에는 보조관측실이 있다. 터널형의 돔이 기잉- 열리면 개방된 옥상에 여러 대의 근사한 망원경들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낮에는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관측할 수 있고, 밤에는 화성의 붉은 표면과 안드로메다은하, 카시오페이아자리의 올빼미성단, 황소자리의 플라이아데스성단, 그리고 달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흐린 날, 비오는 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등등 천체 관측에는 제약이 많다.

현재 시각 오후 4시40분. 해는 이미 서산 너머에 있다. “저 산이 보이지요? 저 산 때문에 지금은 태양을 볼 수 없답니다. 대신 저 앞 산꼭대기를 한번 볼까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도 볼 수 있지요.” 차례로 두근두근 망원경에 눈을 대어본다. 하늘이 땅에 있고 산이 하늘에 있다. 아빠와 소녀도, 엄마와 소년도, 연인도, 모두 산과 하늘이 뒤바뀐 망원경 속 세상을 어루만지듯 본다. “나는 안 보여.” 속눈썹이 긴 소년이 말한다. “다시 보렴. 기다려 줄게.” 차례를 기다리던 이가 말한다. “안 보여. 왜 나는 안 보이지?” 다음엔 꼭 보게 될 거란다. 지금 곁에는 흐린 대기 속에 웃음을 띤 채로 꽁꽁 언 사람의 얼굴들이 있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다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20번 대구포항 고속도로 북영천IC에서 내려 청송방향 35번 국도로 북향한다. 오리장림 지나 조금 더 가다 옥계마을 경로회관 앞쪽에서 우회전해 별빛로를 따라 계속가면 보현산 천문과학관과 전시관이 나오고, 별빛마을 지나 계속 오르면 천문대다. 천문전시관은 10시부터 18시까지(12시부터 13시까지는 장비점검시간)며 입장료는 어린이와 청소년 1천원, 성인 2천원. 천문과학관은 16시부터 22시까지(17시부터 18시까지는 장비점검시간) 매 정시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며 입장료는 어린이와 청소년 2천원, 성인 4천원이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 명절 당일은 휴관한다. 천체관측에는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참고해 방문하는 것이 좋다. 보현산 천문대는 연구기관이지만 시설 외 단지 내 출입은 가능하다. 동절기에는 오후 4시30분 이후 통행이 금지된다. 방문객을 위해 마련해 놓은 천문대 전시관은 9시30분부터 16시30분까지 개관하며 매주 월요일과 도로 결빙 시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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