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팔공산과 달마산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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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0   |  발행일 2018-12-10 제31면   |  수정 2018-12-10
[월요칼럼] 팔공산과 달마산
배재석 논설위원

한 달에 한번 산을 찾는 산악회를 따라 전국을 다니다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우후죽순 늘어나는 게 케이블카와 출렁다리·레일바이크·집와이어다.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설치하다보니 산과 섬·호수·바다 할 것이 금수강산이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크고 작은 케이블카 시설만 하더라도 지난해 현재 155기에 달하고, 설악산 오색·전북 진안 마이산 등 30여 곳에서 추가로 추진 중이다. 출렁다리도 원주 소금산·파주 감악산 등 전국에서 운영 중인 시설이 50여개에 이른다.

대구 경북에도 케이블카·출렁다리 열기가 뜨겁다. 김천시는 95억원을 들여 지난달 부항댐 출렁다리를 개통했다. 울진군은 지난 4월 왕피천 엑스포공원과 해맞이공원을 연결하는 715m 케이블카 공사를 착공했다. 국내 최대 생태경관보전지역 환경훼손 우려가 있었지만, 연간 관광객 30만명 유치 장밋빛 전망에 묻혀버렸다. 포항시는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 1.8㎞ 해상케이블카 설치에 나섰다. 대구시 역시 환경단체 반발에도 불구하고 140억원을 들여 팔공산 케이블카 정상에서 동봉 방향 낙타봉까지 길이 320m, 폭 2m 구름다리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달성군도 비슬산 케이블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문제는 지역특색을 무시한 채 의욕만 앞선 지자체들의 ‘베끼기’ 관광사업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구름다리도 처음에는 호기심과 입소문에 한두 번 찾을지 모르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품이라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재방문이 안 되고 발길이 뜸해지면 명물은커녕 유지비만 잡아먹는 흉물 ‘썰렁다리’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도 상품주기를 고려해 보면 출렁다리와 집와이어는 최대치 수익창출이 가능한 ‘캐시카우(Cash Cow)’ 단계를 지났다고 지적한다.

출렁다리 열풍이 불면서 국내 ‘최장(最長)’ ‘최고’ ‘최초’만 앞세울 뿐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자연환경의 가치가 묻히는 점도 아쉽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길이 200m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가 국내 최장이라며 자랑하더니 지난달 개통된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256m)에 1위 타이틀을 내줬다. 대구시가 국내 최장을 강조하는 320m 팔공산 구름다리도 명성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듯하다. 비록 산악지대는 아니지만 이미 충남 예산군이 예당호에 402m, 논산시가 탑정호에 600m 길이의 출렁다리 공사를 벌이고 있다.

발상을 전환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굳이 인공 구조물이 아니라도 ‘환경과 관광’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전남 해남 달마산에 조성된 둘레길(17.74㎞) ‘달마고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12곳 암자를 연결하는 수행의 길과 옛사람들이 장터를 오가던 삶의 길을 되살려 지난해 11월 개통한 달마고도는 길을 낼 때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중장비를 쓰지 않고 지게로 돌을 나르고 곡괭이·삽·호미와 손으로 땅을 다듬었다. 그 흔한 나무데크·철계단도 철저히 배제하며 원형을 살렸다. 길이 완성되자 전국에서 걷기 여행객이 몰리면서 축제가 열리고 올해 국가균형발전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달마고도를 기획한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요즘 유행하는 출렁다리·케이블카가 달마산에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사람이 산에 ‘깃드는’ 존재가 돼야 한다.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 꽃과 새와 나무처럼 산을 해치지 않으면서 산과 만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연생태계와 불교문화의 보고(寶庫)인 팔공산이 어디를 보나 달마산만 못하겠는가. 절과 암자가 55곳에 이르고 국보와 보물만 30점이 넘는다. 천년고찰 동화사, 왕건의 공산전투, 부인사 선덕여왕 행차와 초조대장경, 임진왜란 영남 의병 중심지 등 스토리텔링 자산도 무궁무진하다. 굳이 ‘그게 그거’인 구름다리에 목을 매지 않더라도 5개 지자체가 공동 조성하고 있는 108㎞ 둘레길을 명품으로 만들고, 불교문화 체험·한티성지 순례 등 다양한 탐방코스를 개발한다면 전국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소가 될 수 있다. 그러잖아도 팔공산은 지금 온갖 난개발로 신음 중이다. 팔공산의 체계적인 보전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관을 훼손하는 인공 구조물을 늘리기보다 국립공원 지정이 더 시급한 과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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