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의 ‘혼밥’

  • 송국건
  • |
  • 입력 2018-12-10   |  발행일 2018-12-10 제30면   |  수정 2018-12-10
부정측면 털어낸 식사정치는
우군이나 적군과의 소통장치
역대 국가원수들도 즐겨 사용
文대통령 ‘나홀로 식사’ 주장
사실이면 심각한 문제일 수도
[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의 ‘혼밥’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한국의 정치행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공무원, 기업인, 언론인 같은 사회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갖는 식사 자리가 대폭 줄고 규모도 작아졌다. 건전사회로 가는 길인데 그만큼 소통도 줄었다. 시행 초기에 법이 규정한 한도 내의 식사 자리마저 아예 피해버리는 분위기가 있었고, 지금도 많은 정치인들이 행여 뒤탈이 날까 밖에서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식사정치’라는 용어도 점차 생소해진다. 식사정치는 과거 은밀한 밀실거래가 오갔던 ‘요정정치’와는 다른 개념이다. 조찬이나 오찬 혹은 술을 약간 곁들인 만찬을 함께하며 소통하는 자리다. 같은 당 사람들끼리는 결속을 다지고 다른 당 사람들과는 서로의 생각을 듣고 의견을 나눈다. 정치권 밖의 사람들과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며 정책조언을 듣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야합이나 청탁이 곁들여질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순수한 의미의 식사정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 출신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식사정치를 적절히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청와대 칼국수 회동’은 청렴과 개혁, 격의 없는 소통의 상징이었다. 외부 인사들도 초청한 청와대 공식 식탁에 칼국수 한 그릇과 떡 한 조각만 덜렁 올려서 썰렁했지만 오히려 후딱 식사를 마치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현장 정치를 할 때는 물론 청와대 재임 때도 하루 세 끼 식사 시간을 국정운영에 적절히 활용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아침식사는 가급적 관저에서 청와대의 젊은 비서관들과 함께하며 현황을 분석하고 참신한 구상을 귀담아들었다. 출입기자들과의 산행 후엔 청와대 밖에서 삼계탕을 나눠 먹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저녁식사 시간에 가끔씩 정치인들을 청와대로 초대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혼밥’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여의도 시절엔 참모들의 권유로 어느 정도 식사정치를 했지만 청와대 입성 후엔 공식적인 오찬이나 만찬 자리 외엔 혼자 식사를 했음이 탄핵과정에서의 증언들로 드러났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혼밥’을 자주 한다는 말이 정가에서 나왔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진보진영 원로인 함세웅 신부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한 얘기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요새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한다”고 방송에서 말했다. 또 “그건 위험신호다. 대통령이 어떻게 혼자 밥을 먹느냐. 집권해서 1년 지나가면 귀가 닫히는데 그게 문제”라고도 했다. 이 말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재신임하는 등 ‘특감반 비위’ 처리 과정에서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함세웅 신부가 손학규 대표에게 한 말을 다시 옮기는 방식이어서 신빙성은 일단 떨어진다. 최근 민주평화당이 바른미래당·정의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여권과 대치 중인 만큼 대통령이 소수야당과도 소통하라는 압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의 원로, 문재인정부와 뿌리가 같은 야당 유력 정치인에게서 대통령의 불통 문제가 상징적으로 거론된 건 예사롭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양대 현안인 남북관계와 경제문제에서 문 대통령이 어느 한 쪽의 말만 경청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시점인 까닭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둘러싼 남남 갈등에도 문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라고만 한다. 경제지표가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증거함에도 “과거 정부 탓이고, 더 좋아지기 위한 과정”이라고만 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