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들메꽃’ 윤명이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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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7   |  발행일 2018-12-07 제41면   |  수정 2018-12-07
다례원에서 한정식집 변신…입맛 까다로운 중년여성 단골로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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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꽃의 상차림은 자극적인 양념을 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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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백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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텁텁하지 않고 상큼한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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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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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경험없이 차린 식당이 망하고 다도 공부에 심취한 윤명이 들메꽃 사장. 그녀는 다례원을 운영하다가 자연스럽게 계절이 담긴 한정식당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나갔다

오래전 눈여겨 봐 뒀던 화사하고 정감이 가는 한정식집이 있었다. 달서구 두류동 도시철도 2호선 내당역 3번 출구 근처에 깃을 튼 ‘들메꽃’이다. 상호가 맘에 들었다. 여주인 윤명이씨의 심성 또한 상호를 빼닮았다. 그녀는 항상 귀보다 눈빛이 더 쫑긋하다. 그 쫑긋함 옆에 미소가 동행한다. 단아함과 질박함, 그리고 단순함. 그런 울림을 밥상에 구현하고 싶어한다.

그녀는 계절 식재료를 존중한다. 그게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밥상이라고 믿는다. ‘이제 됐다’는 안이한 맘도 경계한다. 항상 펜을 지니고 있다. 손님 대화 중에 참고할 만한 내용을 적어두기 위해서다.

그녀의 1부 인생은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어머니는 예천읍 장터에서 우동, 짜장면 등을 파는 중식당형 분식집을 꾸려갔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 때는 가장 열정적이지만 일상에선 너무나 다소곳했다. 한마디로 종부의 포스였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나름 깡아리를 품고 있었던 그녀에게 비친 어머니의 삶은 그렇게 바보스러울 수가 없었다. 툭하면 ‘난 절대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독백했다.

하지만 핏줄의 굴레는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녀 또한 훗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식당을 운영하게 된다. 예전 어머니처럼 그녀도 한 포기 들메꽃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문경에서 여고시절을 보내고 26세 때 대구로 온다. 결혼 직후 직장생활을 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서구 원대오거리 근처에서 유명한 해물탕집을 꾸려가던 친척이 돈을 너무 잘 벌어 내심 식당에 대한 막연한 야심을 갖게 된다. 어느 날 덜컥 그 식당을 인수하게 된다. 너무나 막연한 호기심, 그녀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난생처음 생업이라는 게 얼마나 지켜나가기 어려운가를 절감한다. 식당업에 필요한 특수근육이 그녀에겐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팔달시장에 가서 각종 식재료를 사갖고 왔다. 익숙지도 않은 짐자전거를 몰고 다니다가 넘어져 몸 여기저기가 멍들기 시작한다. 기술을 전수 받았다지만 막상 요리를 해보면 그 맛이 나오지 않았다. 돌아서면 반찬 걱정이었다. 휴식을 취해야 될 심야에도 노트에 내일 요리에 대한 구상을 적어내려갔다.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몸져 눕게 되고 결국 수술을 받게 된다. 병석에 누운 그녀는 ‘식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하면서 스스로에게 백기를 든다. 1년도 안 돼 적자 상태의 가게를 처분했다.


다례 배우며 茶와 직결된 다식에 관심
도심속 전원풍 언덕배기 시작한 다례원
손님들 곁드는 식사 제안, 한정식 변화

시어머니가 농사 지으신 식재료 공수
양념 과하지 않아 질박·단아한 메뉴
식감 겹치지 않게 조절한 풀코스 한상
식사 후 커피대신 茶…찻집 기능 살려


◆다도인으로 변신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남편의 배려로 실컷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부터 파고들었다. 계은다례원 배계순 원장 문하에 들어가 기본기를 터득했다. 이어 한국차인연합회 다도대학에 입학했다. 중국과 일본차의 개략적인 흐름을 익혔다.

차를 배우다 보면 연관된 공부도 함께 해야 한다. 차와 직결된 다식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나를 파면 다른 게 따라왔다. 약선요리는 물론 이탈리아 요리에도 손을 댔다. 너무 가지를 많이 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떡은 물론 정과 등 한과의 세계로도 흘러갔다.

차가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선 동양음악, 특히 한국음악이 중국·일본음악과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가도 알아야 한다. 차를 완성시키려면 도자기, 꽃꽂이, 바느질, 향, 서예, 한복 등까지 맞물려 돌아가야 된다. 모든 게 연결돼 있었다. 그 연결의 중심에 예도(禮道)가 있었다. 사람의 깊이와 품격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도도 한갓 허영에 불과하지 않을까. 전례원의 예절교육과도 인연을 맺었다. 모르면 아는 것밖에 모르지만 더 깊게 알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어느 날 기본 공부가 끝났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동안 배운 콘텐츠를 이웃과 공유하고 싶었다. 적당한 문화사랑방이 필요했다. 도심 속 전원풍의 공간을 찾아다녔다. 20년전 두류동의 한 언덕배기 양옥 한채를 찜했다. 지금은 예식장과 각종 상업시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때는 허허벌판이었다. 햇살이 너무 좋은 집이었다. 도심 속 산속 같은 분위기였다. 담쟁이덩굴을 심는 등 자기 취향에 맞도록 집을 꾸몄다. 새벽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마당으로 나가 일을 했다. 1년간 이 공간에 어떤 색칠을 할 건가를 놓고 고민했다. 일단 그녀가 운영하는 계산다례원 문화사랑방 같은 찻집을 차렸다. 2003년 9월이었다.

차를 기반으로 차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신개념 공간이었다. 당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보이차 등 다양한 차의 세계를 한자리에서 맛 보여주고 싶었다. 수성구 찻집 쌍어각의 보이차와도 윈윈전략을 짰다. 지금은 동네마다 이런저런 인문학적 공간이 적잖지만 그때만 해도 들메꽃 같은 버전의 공간은 그렇게 흔치 않았다. 자연히 내공 높은 차인들이 입소문을 듣고 많이 찾아왔다. 차를 판다는 생각보다 예전 선비들처럼 고담준론의 시간을 향유하고 싶었다. 그날 기온과 기분에 맞는 꽃꽂이를 연출했다. 반가의 아녀자처럼 함초롬한 한복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말수는 극도로 줄였다. 대신 그 고요한 틈에 생기발랄하고 은근한 멋을 주는 소품을 끼워넣었다. 현대미술에도 비상한 관심을 가져 전국 갤러리 투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집안 곳곳이 각종 다기와 차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부터 단골들이 “다식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한끼 식사도 곁들이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제안을 한다. 그런 여론에 힘입어 들메꽃은 점차 식사가 가능한 찻집으로 변한다. 나중에는 번듯한 한정식집으로 탈바꿈된다. 영업을 위해 그렇게 수정한 것이 아니다. 주위의 여건, 상황변화에 자연스럽게 대처한 것뿐이다.

◆한식당으로 전환

13년전 들메꽃은 한식당이 된다. 찻집으로 출발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물론 찻집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녀에게 차는 또 다른 분신이기 때문이다. 식사 후 커피 대용으로 차를 내준다. 나름 고가의 한정식을 시키는 예약자에겐 꼭 분위기에 맞는 차로 배려하는 게 원칙이다. 그녀의 식당운영 제1원칙은 뭘까? 수입 식재료, 가공식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다행히 경남 거창군 가조에 시어머니가 농사를 짓고 사신다. 고춧가루, 곡채류, 참기름 등 웬만한 건 거기서 갖고 온다.

죽부터 남달라야 된다고 믿는다. 너무 노출돼 이제 한물 간 흑임자죽에서 벗어났다. 호박죽만한 게 없다 싶었다. 하지만 희멀건 뷔페용 호박죽과 다르게 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 매일 찹쌀과 단호박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뒤 이탈리아 파스타 소스처럼 뭉근하게 끓여낸다. 호박죽 포스가 남달라 ‘한 그릇 더’를 요청하는 단골도 적잖다. 이어 일반 메밀묵, 곤약, 우뭇가사리 등의 질감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올방개묵’을 먹어야 한다. 여기엔 검은깨가 들어가 있다. 호박죽과 올방개묵만으로도 식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천편일률적인 걸쭉한 드레싱버전의 샐러드도 멀리한다. 파인애플과 레몬에 매실청을 섞어 보름 정도 발효시키고 그 맑은 액을 사용해 상추, 치커리, 레디치오, 베이비순, 적양배추 등으로 구성된 샐러드에 뿌려준다. 텁텁하지가 않다.

새로운 식감을 위해 구운 마도 낸다. 메밀전병도 콩나물, 정구지, 숙주나물 등을 사용해봤지만 무젓갈 묵은지를 속재료로 넣는 것만한 게 없다는 걸 시행착오 끝에 알아냈다. 마지막엔 검정깨가 들어간 바싹한 전병같은 식감이 느껴지는 튀일, 그리고 튀긴 검은콩, 말린 자색고구마를 스낵처럼 낸다.

아무거나 무절제하게 원칙없이 잡다하면 그런 밥상은 죽은 거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양념이 과하지 않고 메뉴간 맛의 충돌도 별로 없다. 그래서 다 먹고나서도 부대끼지 않는다. 그녀가 메뉴와 메뉴 사이를 잘 조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입맛 까다로운 중년 여성 단골이 북적댄다.

◆그녀가 전하는 밥상의 비밀

“역시 ‘음식이 만복의 근원’이다.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잘 먹는다. 하지만 상당수 남자들은 편식하고 새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거의 없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장수하는 건지도 모른다. 화목한 집안은 음식을 서로 나눠먹기도 하고 얘기도 풍성한데 문제가족은 거의 대화가 없고 편식에 길들여져 있다.”

달서구 달구벌대로 368길 8. (053)652-543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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