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의 힘은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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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4 00:00  |  수정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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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있고, 미술관도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가면 적지 않은 관객들이 울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진심으로 감동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고흐를 느끼려고 찾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프란시스 고야 때문에 항상 북적인다. 스페인의 경제는 바르셀로나가 움직이고 있지만 행정수도로서의 마드리드 지위는 굳건하다. 바르셀로나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프라도 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정신까지 가져올 수 없는 일이다. 또 이탈리아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에게 선물한 세기의 작품 ‘모나리자’가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사실을 두고두고 가슴 아파한다.
 

아시아에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정신적 명소들이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은 중국미술관이지만 사실상 청나라 미술과 근굛현대미술에 국한된다. 진정한 중국의 정신은 대만 고궁미술관에 있다. 후한을 비롯, 당굛송굛원굛명의 고전들이 모두 여기 소장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신은 정창원(正倉院굛쇼소인)에 있다. 나라현에 있는 정창원은 쇼무왕이 730년대 창건한 왕실 유물 창고다. 1년에 두 차례만 공개되는 이 곳은 일본 사람들의 무한한 자랑이자 정신적 고향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나라현을 찾고 주민들은 관광 수입과 함께 문화중심지에 산다는 자긍심도 누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가치는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필자는 아마 그 으뜸이 간송미술관이 아닌가 한다.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값어치를 갖고 있다. 가격을 매긴다는 자체가 의미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소장품 총액이 약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문화적 독립을 실천한 간송 전형필의 라이프 스토리는 문화와 나라를 사랑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이다. 삼국시대 문화재부터 고려시대, 조선전기부터 구한 말에 이르는 미술사 대표작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간송미술관 출신 학자들의 노고가 깃든 논문과 에세이 역시 또 하나의 유산이나 다름없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라는 삼원삼재(三園三齋)의 감동적인 예술 스토리는 대구브랜드의 가치를 상상할 수 없게 높일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대구에 온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매력적이고 귀한 유물을 대구가 품는 것과 같다.
 

대구시의 섬유와 패션은 물론, 산업적 디자인의 힘을 밑바탕부터 끌어올릴 것이며, 미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간송미술관에서 우리의 전통과 역사, 미의식을 제대로 배우며 꿈을 펼칠 것이다. 각급 기관 및 단체 관계자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서 미팅하는 모습을 그려보자.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일본 베네세 그룹의 제련공장 때문에 가가와현 어민들이 고기가 잡히지 않아 생계가 어렵게 된 적이 있다. 베네세 그룹은 지중미술관을 지어주었고, 덕분에 가가와현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면서 어민들의 소득은 크게 늘어났다. 스페인에서 가장 낙후지역으로 손꼽히던 바스크주의 빌바오시 역시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한 뒤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급부상하면서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은 우리나라 문화적 헤게모니를 대구시가 거머쥘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서울이나 부산 등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한국문화의 정수가 살아 숨쉬는 대구를 찾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70년간 반목과 질시를 거듭해온 남북한을 이어줄 연결고리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우리 할아버지들의 그림과 이야기일 수도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을 매개로 지역예술인과 현대미술가는 협업을 하고, 수많은 학생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배가되며 고문서의 보존처리 등 새로운 창의산업이 생기는 것을 상상해 본다. 이는 인류가 예술을 지속했던 것에서 반추해 볼 수 있다.

한 만 수 (대구시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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