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만과 욕망으로 쌓은 ‘8m 바벨탑’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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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4   |  발행일 2018-11-14 제28면   |  수정 2018-11-14
대구미술관 ‘어미홀프로젝트’
난지도·악마의 산 모티브 제작
나현 작가 강렬한 작품 첫전시
인간의 오만과 욕망으로 쌓은 ‘8m 바벨탑’
나현 작
인간의 오만과 욕망으로 쌓은 ‘8m 바벨탑’

대구미술관 어미홀에는 ‘바벨탑’이 있다. 나현 작가<사진>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바벨탑을 만들었다. 높이 8m, 가로 22m, 세로 11m의 탑이다. 거대한 어미홀에 어울리는 규모이다. 어미홀은 높이 18m, 너비 15m, 길이 50m의 공간이다. 바벨탑은 대구미술관 ‘어미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출발에 걸맞게 강렬하다. 대구미술관 측은 “시작할 때 강한 인상을 줘야 다른 작가들도 어미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겠느냐. 작가뿐 아니라 관객들도 동시대 미술을 좀 더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바벨에 ‘서로 다른 혀’라는 부제를 붙였다. ‘혀’는 언어를 뜻한다. 실제로 작가의 바벨탑 주변은 온갖 언어로 시끄럽다. 무려 28개의 언어가 뒤섞여 웅성댄다. 바벨탑의 의미가 잘 전달되는 장치이다. 하늘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오만과 욕망으로 쌓은 탑이 바벨탑이다. 신은 다양한 언어를 만들어 의사소통이 안되게 했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은 서로 다른 언어와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작가는 서울 ‘난지도’와 베를린 ‘악마의 산’을 바벨탑의 유적으로 추정하고 입증해 나간다. 객관적인 자료를 주관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작가는 “예술의 자유로운 경험”이라고 했다. 거대한 바벨탑을 만든 것은 물론 3층에 설치 2점, 드로잉 5점, 아카이브 100여점 및 참고자료를 갖다놓았다. 참고자료를 보관하는 가구도 직접 제작했다. 2층을 통해 바벨탑 상부에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2층 난간과 바벨탑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었다. 작가는 “구조안전 검토를 마쳤다. 백년 살 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만들었다. 안심하고 다녀도 된다”고 했다.

악마의 산과 난지도가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쓰레기이다. 악마의 산이 전쟁 쓰레기이고, 난지도가 생활 쓰레기라는 게 다를 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은 똑같다. 작가는 “전체주의적이고, 배타적 민족주의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고 했다. 바벨탑의 공중 정원에는 대구의 귀화종이 심겨져 있다. 귀화 식물은 다양한 언어, 다양한 인종을 상징한다. 작가는 “바벨탑은 모든 나라에 유효하다. 한국과 독일뿐 아니라 일본, 인도에서도 바벨탑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바벨탑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역피라미드 모양의 또 다른 탑이 존재한다. 화려하다. 인간의 오만을 응징하는 신의 분노를 담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지만, 작가는 정작 “내부의 탑 역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했다.

작가의 바벨탑은 미술에 대한 관념을 버릴 때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단순히 바라보는 게 아니라 느끼고 만질 수 있다. 오감 자극 작업인 셈이다.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인문학부 순수미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9년 1월13일까지. (053)803-7900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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