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영풍석포제련소,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 김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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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3   |  발행일 2018-11-13 제30면   |  수정 2018-11-15
산업화시대 자리 잘못 잡은
반세기 역사의 석포제련소
정부와 경북도가 적극 나서
주민·산업 피해대책 세우고
이전 장기 로드맵 구축해야
20181113
김기오 편집부국장

1970년 준공한 석포제련소는 농산물과 철광석을 수출하던 영풍(永豊)이 굴지의 종합비철금속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됐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71) 기간 화학·철강·기계공업 고도화 바람을 탔다.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제련소 입지로 첩첩산중 낙동강변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는 최적이었을 것이다. 강변을 따라 1974년 2공장, 2015년 3공장을 완공했다. 석포제련소는 연간 아연괴 36만t을 생산하는 세계 4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석포제련소는 하루 평균 1천400~1천600t의 폐수가 생기고, 먼지·황산화물·질소산화물 등 대기 오염물질 발생량은 연간 43만t에 이른다고 한다. 반세기 역사의 제련소는 경제적 기여 못지않게 환경오염사고 제조기의 오명을 낳았다. 청정한 땅도 사람도 나무도 오염시켰다.

석포제련소는 2015년 친환경 경영을 선언했다. ‘첫째도 환경, 둘째도 환경, 셋째도 환경’을 외쳤다. 비판을 의식한 구호는 공허했다. 올해 2월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폐수 70여t을 방출했고 현장을 숨기려다 들통났다. 폐수에는 허용기준치 10배의 불소(기준 3㎎/ℓ이하)와 기준치의 2배가 넘는 셀레늄(기준 0.1㎎/ℓ이하)이 검출됐다. 석포제련소의 환경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경북도 조업정지처분이 계기가 됐다. 제련소 측은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법원은 받아들였다. 행정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가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불소는 살충제·쥐약의 주원료인 독성물질이다. 셀레늄은 황산공장 노동자에게 중독을 일으키고 함량 높은 식물을 먹은 동물에게 치명적 해를 끼친다. 환경부와 환경공단이 지난해 제련소 반경 4㎞ 내 448곳의 중금속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271곳이 비소 기준치(25㎎/㎏)를 넘었다. 아연 기준치(300㎎/㎏)를 초과한 곳은 129곳, 카드뮴 기준치(4㎎/㎏)와 납 기준치(200㎎/㎏)를 넘긴 곳은 59곳·9곳이었다. 제련소에서 나온 중금속은 인체에도 쌓였다. 석포면 주민 2천여 명 가운데 771명을 조사한 결과 납과 카드뮴 농도가 국민 평균치( 1.94㎍/㎗, 5㎍/g-cr)보다 2~3배 높았다. 제련소 뒤쪽 산은 불모지가 됐다. 소나무가 말라죽은 땅이 수십㏊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환경단체는 제련소가 내놓는 아황산가스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조업정지 위기에 처한 석포제련소는 다시 “환경”과 “오염물질의 완벽한 차단”을 외치지만 “즉각 폐쇄하라”는 환경단체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연매출 1조4천억원 기업을 하루아침에 폐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석포제련소에는 1천200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석포면 주민만 800여 명이다. 생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1만5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제철·자동차·조선 등 연관 산업의 범위도 넓다. 영풍이 지금까지 개선명령·과태료·과징금 등 가벼운 처분만 받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지 주민 피해와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정부·경북도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대체산업 육성 등 제련소 주변의 주민 생존권 보장 및 연관 산업에 미칠 피해 대책과 함께 제련소 이전 장기로드맵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려도 해야 할 필수 과제다.

영풍의 홈페이지 대문은 온화한 미소의 엄마와 어린아이가 손장난을 치며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가득하다. ‘GREEN’ ‘영풍은 자연과 함께 성장한다’는 문구도 선명하다. 이 아름다운 그림과 글은 그러나 석포제련소의 그간 행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석포제련소는 2013년 이후 5년 새 48건의 환경법령을 위반했다. 40일에 한 건꼴이다. 큰 사건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건 아니다. 작은 사건사고들이 그전에 잇따라 터진다. 석포제련소는 ‘하인리히 법칙’의 절대적 예외일까. 1천300만의 젖줄 최상류 지척에 제련소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생명과 환경의 시대에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다.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고 했다. 영풍, 이제 잘못 꽂은 석포의 깃발을 뽑아야 할 때다.
김기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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