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영웅본색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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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0   |  발행일 2018-10-20 제23면   |  수정 2018-10-20

영화 ‘영웅본색(英雄本色)’은 1980년대 중반 제작된 홍콩누아르의 대표적 영화다. 홍콩누아르는 1980~90년대 홍콩에서 만들어진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갱스터 액션영화들을 가리킨다.

1986년 오우삼 감독이 제작한 영웅본색에는 주윤발(저우룬파·63)과 장국영이 출연했다. 한때 암흑가 보스였으나 손을 씻고 새 삶을 시작한 아호(적룡), 경찰의 길을 걷는 아호의 동생(장국영), 아호와 함께 암흑가에서 잘나갔지만 몰락한 채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때를 기다리는 소마(주윤발), 아호와 소마를 배신한 아성 등이 남자들의 의리와 배신, 복수를 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개봉됐다. 개봉 당시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다 재개봉관과 동시상영관을 돌면서 뒤늦게 돌풍을 일으켰다. 이 영화로 주윤발과 장국영은 국내 청소년에게 우상이 됐다. 필자는 1988년쯤 지금은 없어진 재개봉관인 대구 북구 대현동 신도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영화 속 소마가 성냥개비를 물고 쌍권총을 쏘아대던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후 홍콩 액션영화의 쇠락과 함께 잠시 잊혔던 주윤발이 30여년 만에 또 다른 모습의 영웅이 돼 등장했다. 주윤발은 지난 6일 영화 홍보차 대만을 방문해 팬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천1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10년부터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해 온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주윤발은 엄청난 부자임에도 한달 용돈으로 800홍콩달러(약 12만원)를 쓰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휴대전화를 17년 동안이나 쓸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재산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데는 부인의 내조가 한몫을 했다. 부유한 싱가포르 상인의 딸이었던 그의 부인 천후이렌은 남편의 출연료를 부동산 등에 투자해 자산을 불렸고, 남편의 전 재산 기부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결혼한 지 30년이 된 홍콩 연예계의 대표적 잉꼬부부지만 자식은 없다. 결혼 후 부인이 임신을 했지만 7개월 만에 사산되자 주윤발은 더는 아내에게 아픔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갖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 재산 기부의사를 밝힌 후 주윤발은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윤발처럼 보통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이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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