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중양절과 국화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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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7   |  발행일 2018-10-17 제31면   |  수정 2018-10-17

국화는 한 해 끝자락에서 찬 서리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강인한 식물이다. 대부분의 초목들이 추운 겨울을 대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국화는 홀로 꼿꼿이 피어 그윽한 향기를 뽐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국화의 성정이 군자와 같다하여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라 불렀고, 오상고절(傲霜孤節)에 비유했다.

국화의 고결한 기품을 예찬한 글은 차고 넘친다. 중국 위나라 장수 종회(鐘會)는 국화부(菊花賦)에서 국화의 성품을 이렇게 노래했다.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둥근 꽃송이가 위를 향해 피어 있으니 하늘(天)에 뜻을 두고, 순수한 밝은 황색은 땅(地)을 뜻하며, 일찍 싹이 돋아나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은 군자의 덕(君子之德)을 가졌음이며, 찬 서리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은 고고한 기상을 뜻하고, 술잔에 꽃잎이 떠 있으니 신선의 음식이다.’

다산 정약용도 국영시서(菊影詩序)에서 ‘여러 가지 꽃 중에 국화는 특별히 빼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꽃을 피우는 것이 하나이며, 오래 견디는 것이 하나다. 짙은 향기가 하나요,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싸늘하지 않은 것이 하나다’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문인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꽃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 따라 9단계로 나눠 등급과 품계를 매겼는데 국화를 매화, 연꽃, 대나무와 함께 1등으로 분류했다.

중국에서는 국화가 장수를 상징하는 꽃으로 통한다. 옛 기록을 보면 염제 신농씨는 국화를 장생불사약으로 널리 재배했다는 설이 있다. 한(漢)나라 때 유향이 지은 중국 최초의 설화집 열선전(列仙傳)에는 ‘팽조(彭祖)가 국화를 먹고 1천700년을 살았으나 얼굴은 17~18세 소년과 같았다’고 전한다. 실제로 국화는 다양한 효능을 갖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국화차를 오래 복용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 몸을 가볍게 하며 빨리 늙지 않는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오장을 도우며 사지를 고르게 한다. 감기·두통·현기증에 좋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은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이다. 일년 중 양의 기운이 가장 강성한 날로 예전에는 중요한 명절이었다. 이날은 국화전과 국화주·국화차를 먹고 남자들은 산에 올라가 풍즐거풍(風櫛擧風)하는 풍습이 있었다. 비록 요즘은 잊힌 명절이지만 오늘 하루 커피 대신 국화차를 마시며 가을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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