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안전 위해 법 위반한 아파트

  • 양승진
  • |
  • 입력 2018-10-16   |  발행일 2018-10-16 제30면   |  수정 2018-10-16
[취재수첩] 안전 위해 법 위반한 아파트
양승진기자<사회부>

‘아파트 모범관리단지가 5천700여만원 공사대금 쪼개 수의계약’ 기사가 보도된 지난 5일 오후. 기자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공사대금을 쪼개 수의계약을 맺었다고 기자가 지적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장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공용구역 수선 공사를 진행하면서 맺은 쪼개기 계약은 아파트단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며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화두가 안전인 만큼 안전을 위해 예방공사를 실시했다. 모범관리로 선정된 우리 단지에 쪼개기 수의계약에 따른 과태료 처분은 별개의 문제”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자는 관리소장의 메일을 받고 뿌듯함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다. 남들이 간과하고 지나친 무언가를,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낯을 뜨겁게 만든 보도를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게 한 한편, 계약금을 쪼개 수의계약한 사실을 지적한 것을 두고 ‘세월호 사건’을 운운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1천400여 가구가 입주해 있는 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공용구역 수선 공사(총계약금 5천697만5천100원)를 실시하면서 천장 마감재 공사는 12회, 옥상바닥 방수작업은 4회, 쓰레기 집적소 부동수전 교체공사는 3회 등 총 19회에 걸쳐 공사비를 나눠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이 300만원 이상일 경우엔 공개입찰을 시행해야 한다’는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 사업자 선정 지침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대구시 감사관실의 공동주택종합감사에서 적발됐고, 시 감사관실은 이 아파트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것을 관할 구청에 지시했다.

처음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항의 메일을 받았을 때 이 아파트 단지와 세월호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두어번 메일을 읽어보니 이 아파트 단지와 세월호 사건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모두 ‘목적’을 위해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29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안전과 관련된 ‘법’에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준 전형적 인재(人災)였다. 이 아파트는 관계법령을 어겨가면서까지 안전을 위한 예방공사를 실시했다.

관리사무소장은 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먼저 이 아파트단지가 얼마나 ‘법’을 잘 준수했는지를 관리책임자로서 되짚어봤어야 했다. 법을 어겨가면서 계약금을 쪼갠 내부사정을 공개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안전’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법’을 위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각종 계약을 체결할 때 이를 쪼개 편법으로 특정업체에 몰아준 나쁜 선례를 수차례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는지 평가하는 시대다. 대구시의 ‘2018년 공동주택 모범관리단지 아파트’로 선정된 이 단지가 진정 ‘모범관리단지’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선 이 같은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