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登高自卑(등고자비)

  •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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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5   |  발행일 2018-10-15 제30면   |  수정 2018-10-15
[하프타임] 登高自卑(등고자비)
임호 경북본사 차장

대구·경북지역 핫 이슈인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를 볼 때면 ‘등고자비(登高自卑)’가 떠오른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와 순리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 8일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폐수 무방류시스템’에 대한 실증시설(파일럿 테스트) 검증과 대구 취수원의 구미 해평취수장 이전에 따른 수질·수량 변화 연구용역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취수원 이전을 전제로 한 실증시설 검증이기에 두 광역지자체장의 절묘한 정치적 계산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취수원 이전과 폐수 무방류시스템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이 결코 아니다. 폐수 무방류시스템은 1천300만 영남권 주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의 ‘깨끗한 물’ 실현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다.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대한 무방류시스템이 성공하면 이는 낙동강 유역의 모든 산단으로 확대된다. 환경부도 4천억원 이상을 들여 구미산단 전체에 무방류 시스템을 구축해 낙동강 전체 수계에 대한 환경오염 방지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대구시가 “폐수 무방류시스템은 현실성이 없다”며 취수원 이전에 더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환경 전문가들은 취수원 이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낙동강 최상류인 봉화 석포면에 국내 최대 아연제련공장인 영풍제련소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영풍제련소가 1급 발암물질인 카드뮴 등 각종 오염물질을 48년째 낙동강에 흘려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영풍제련소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46건의 환경 관련 법령을 위반해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는 평균 40일마다 한 번 위반한 것이다. 구미 해평취수장 상류에 영풍제련소와 같은 점오염원(點汚染源)과 비점오염원(非點汚染源)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취수원을 이전하더라도 낙동강 상류에 대규모 환경오염 사태가 발생할 경우엔 사실상 대책이 없다.

부산·경남지역 주민의 반발도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는 최근 대구·경북·경남·부산지역 환경단체와 학계, 언론 등이 모인 물 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경남·부산지역 참석자들은 대구의 취수원 이전 방침에 대해 “대구의 아랫 동네는 썩은 물을 마셔도 괜찮다는 것이냐. 이는 지역 이기주의의 극치”라고 강력 반발했다. 지난 7월 김은경 환경부장관도 취수원 이전 문제에 대해 “합리성에 문제가 있다. 낙동강 전체를 살리기 위해선 폐수 방류량을 없애든지 폐수 무방류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이 바람직하다”며 “대구 취수원을 이전한다면 부산·경남의 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구시는 취수원 이전에 올인할 게 아니라 낙동강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이른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취수원 이전은 대구시장직을 걸고 싸울 문제가 아니다. 취수원 이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낙동강 물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고 대구시민을 설득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경북도지사도 대구·경북 상생을 이유로 취수원 이전에 대해 불필요한 발언을 할 게 아니라 경북지역 댐 물을 대구에 공급해주는 등의 대안을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취수원 이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지역을 넘어 영남권과 대한민국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진심어린 고민과 실행을 해주길 바란다.
임호 경북본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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