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참삶을 가꾸는 교실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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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5 07:52  |  수정 2018-10-15 07:52  |  발행일 2018-10-15 제15면
[행복한 교육] 참삶을 가꾸는 교실 글쓰기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아침에 어제 초사흘 달을 보고 온 아이들이 너무 가늘고 예뻤다고 말했다. 달은 늘 그 달이지만 어떤 달을 어떤 날씨에 어떤 배경으로, 무엇보다 어떤 마음으로 보는가에 따라 달리 보인다. 오랫동안 달을 관측하게 하고, 설명을 해 준 보람이 있어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우리 반 시집이 언제 나오는지 관심이 많다. 내가 여러 번 오늘 오후에 나온다고 했는데도 또 묻는다. 묻고는 ‘아하’ 하고 질문을 거두어 간다. 기다리는 마음이 그만큼 큰 셈이다. 나도 기다려진다.

대구교대에서 수업 참관 겸 보조교사로 1학년인 예비교사가 온 지 세 번째가 되었다. 나로서는 어떻게 하든 이 친구들이 좋은 교사가 되는데 작은 도움이 되게 하려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수업도 신경을 써서 한다. 이렇게 두 시간 같이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을 마구잡이로 꾸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틈타서 아주 흥분을 한다. 이 정책은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책의 유용성에 대한 판단도 경험하면서 내리려고 미루어 두었다.

국어시간에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들’을 보는데 내가 자꾸 정지하고 질문하면서 공부를 하니 감칠맛이 난다. 아이들은 장면 구석의 소품 하나, 표정 하나, 대사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누구라도 소리를 내면 확 째려보거나 ‘야’하고 소리친다. 몰입도가 높아서 수업이 재미있다. 장면마다 이어질 장면을 상상하고 보는데 내가 상상한 것이 하도 틀려서 아이들에게 핀잔을 많이 받았다.

점심 때 우진이가 밥을 남기는 아이들에게 ‘넌 우리 아버지한테 월급 더 줘야 해’라고 하니 아이들이 벙벙하다. 나도 한참 생각하고서야 우진이 아버지가 환경담당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고 맞장구쳐 주었다. 그러고는 ‘너도 나한테 월급 더 주어야 해’라고 하니 ‘왜요’ 한다. 너 때문에 내가 목이 더 아프고 힘들잖아 하니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자기도 태권도 하면서 소리 질러 목이 쉬었다고 답한다.

어제 반 아이들과 놀이터 멀리뛰기 장에 삽질을 해 두고 멀리뛰기를 했는데, 오늘 수학 시간에 소수 두 자리를 배우는데 멀리뛰기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오늘 점심 때 나가보니 착한 우리 교장이 놀이터에서 노는 5·6학년들과 같이 철봉 아래 모래를 뒤집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그냥 시키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먼저 한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점심 때 반 아이들과 맨발 걷기를 하거나 산책하는 교사도 조금 더 늘었다.

교실로 오다가 보니 오른쪽 주목나무에 열매가 발갛게 달려있다. 왼쪽 나무는 없다. 교실에 와서야 내가 주목이 암수 딴 그루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이들에게 주목 하나씩 먹게 했다. 독이 있다고 하니 다들 멀리 갔다. 내가 먼저 먹자 수정이가 독이 있다면서요 라고 물어서 내가 오래 먹어봤는데 한두 개는 먹어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하고 먹어 보였더니 너도 나도 먹었다. 먹기 전과 먹은 뒤 씨앗을 발겨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주목과 더 친해진다. ‘쉿, 주목!’

학교에는 이렇게 글 쓸 거리가 가득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런 체험을 날마다 일기와 시로 쓴다. 그런데 올 해, 교육청에서 학생저자 책쓰기 사업으로 예산을 지원받았다. 그동안 학급문집을 내 오면서 늘 인쇄비가 부담이 되어 학교 복사기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폼 나게 인쇄소에 맡겼다. 그렇게 만든 시집이 인쇄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나도 기다려진다. 빨리 인쇄소로 가봐야겠다. 책을 받아 든 아이들의 표정을 상상하니 나도 흐뭇하다.

학교생활과 학교숲, 가족, 교사, 친구 등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체험을 사진을 찍듯이 소중하게 글로 기록하는 태도는 참삶을 가꾸는 공부에서 가장 소중한 작업이다. 교실 글쓰기는 잘 쓰는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어서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은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라고 불렀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면 그렇게 좋은 글을 선생님은 왜 안 쓰는지 의심한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이 시를 쓸 때마다 같이 시를 썼다. 그러다 보니 이러다 진짜 시인 되겠다고 말했다. 내일부터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학생동아리축제가 열리는데 그중에 학생저자 책 전시회도 있으니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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