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30] 강원 화천 곡운구곡(下)...세속 시비 행여나 들릴까…김수증의 그윽한 ‘와룡담’ 은거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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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4 07:49  |  수정 2021-07-06 14:41  |  발행일 2018-10-04 제23면
세속 시비 행여나 들릴까…김수증의 그윽한 ‘와룡담’ 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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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구곡의 6곡 와룡담. 김수증이 주변에 농수정사(籠水精舍) 등을 지어 은거하던, 곡운구곡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화천군 제공)

3곡 신녀협(神女峽)은 청옥협으로부터 2.5㎞ 상류에 있다. 사내천로 길옆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공원 가장자리에 ‘청은대(淸隱臺)’라는 정자가 서 있다. 신녀협의 정경이 신비스러워 강의 신 하백(河伯)의 딸인 신녀에 비유한 계곡으로, 곡운구곡 중에 경관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꼽았다. 김수증은 평소 흠모하던 김시습이 노닐었다는 신녀협의 수운대(水雲臺)를 김시습의 법명인 벽산청은(碧山淸隱)에서 가져와 청은대(淸隱臺)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의 청은대는 2006년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신녀협은 부드러운 곡선의 너럭바위가 물길 양쪽으로 길게 누워 절경을 이룬다. 곡운구곡을 답사한 정약용은 ‘협곡이 아닌데도 협곡이라고 한 것은 웅덩이의 형상이 마치 마주 서 있는 듯 두 벼랑이 협을 이룬 것 같기 때문’이라고 신녀협을 묘사했다.

3곡 시는 김수증의 조카 김창집이 지었다.

3곡 신녀협 곡운구곡 최고 경관
물길 양쪽 너럭바위가 절경 이뤄

4곡 백운담은 물살이 가장 센 곳
층층이 주름진 바위가 매우 특이

산에 둘러싸인 분지 6곡 와룡담
김수증 ‘농수정사’ 짓고 거처로


‘삼곡이라 빈터에는 선녀 자취 묘연한데(三曲仙踪杳夜船)/ 소나무에 걸린 달은 천년을 흘렀어라(空台松月自年千)/ 청한자(김시습) 놀던 뜻을 이제야 알겠으니(超然會得淸寒趣)/ 흰 바위에 나는 여울 너무도 아름답네(素石飛湍絶可憐).’

4곡은 튀어 오르는 물안개가 흰 구름 같은 못인 백운담(白雲潭)이다. 김수증이 ‘거북이와 용이 물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던 백운담에서는 용의 형상을 한 바위를 볼 수 있다. 정약용은 이곳을 ‘반석이 넓게 깔려 1천여명이 앉을 수 있고, 돌 빛은 순전한 청색에 아주 깨끗하다. 구렁으로 쏟아져 흐르는 물이 기괴하고 웅덩이에서 솟아 넘치는 기운이 언제나 흰구름 같다’고 묘사하며 곡운구곡 중에서 가장 기관(奇觀)이라고 평했다.

조카 창협에게 차운시를 짓게 한 백운담은 물이 깊어 사람들이 모이거나 고기를 잡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곡운구곡 중에서 가장 물살이 센 곳이다. 물살이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것을 김수증은 ‘설운(雪雲)’이라 하고, 정약용은 ‘백운(白雲)’이라 하였다. 이곳은 층층이 주름진 바위가 매우 특이하다.

‘사곡이라 시냇물 푸른 바위에 기대 보니/ 가까운 솔 그림자 물속에 어른거리네/ 쏟아지는 물거품 그칠 줄 모르고/ 뿌연 안개 언제나 연못 위에 피어나네.’

5곡 명옥뢰(鳴玉瀨)는 옥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여울을 의미한다. 백옥담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곡운기는 ‘기이한 장관을 이루기가 백운담보다는 못하나 맑고 온화하기는 백운담보다 낫다’고 적고 있다.

정약용은 1823년 ‘산행일기’에서 ‘명옥뢰는 모여 있던 담수가 쏟아져 내리는 곳이다. 반석이 넓게 깔리고 놀치는(사나운) 물결이 구렁으로 달림으로써 옥설이 함께 일어나고 풍뢰가 서로 부딪쳐 진동한다’고 적었다.

조카 창흡이 차운시를 쓴 이곳은 지금은 가옥과 도로가 들어섰고 축대를 쌓아 올려 당시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곡이라 밤은 깊어 냇물 소리 들리니(五曲溪聲宜夜餘)/ 옥패를 흔드는 듯 빈 숲속에 가득하다(然玉佩響遙林)/ 솔문을 나서면서 가을밤 고요한데(松門步出霜厓靜)/ 둥근달 외로운 거문고 세상 밖 마음이라(圖月孤琴世外心).’

◆농수정사 있던 6곡 와룡담

용이 숨은 못인 6곡 와룡담(臥龍潭)은 김수증이 주변에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지어 은거하던 곳으로, 곡운구곡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김수증은 주자가 여산에 와룡암(臥龍菴)을 지어 제갈량의 위패를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상기하며, 자신의 곡운정사를 주자의 와룡암에 비유하며 이곳을 와룡담(臥龍潭)으로 불렀다고 한다.

곡운기에 ‘화악산은 비취빛을 머금어 책상을 대한 듯하고 그 앞에 용담이 있어 이름을 귀운동(歸雲洞)이라 하였다’라고 한 와룡담은 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명옥뢰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김수증이 농수정사를 지어 기거하면서 경작하던 밭들이 있어 경관의 특색보다 경작하고 거처할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농수정사는 시끄러운 여울물로 세속의 번거로움을 피하는 선비의 집을 말한다. 김수증은 농수정사가 완성된 후 농수정(籠水亭)을 짓고 ‘세속의 시비 소리 행여나 들릴까(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계곡 물로 산을 둘러 막았네(故敎流水盡籠山)’라는 구절이 있는 고운 최치원의 시를 인용하며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6곡 시는 아들 창직이 지었다.

‘육곡이라 그윽한 곳 푸른 물을 베개 삼고(六曲幽居枕綠灣)/ 천길 물 솔숲 사이 은은하게 비치네(深潭千尺暎松關/ 시끄러운 세상일 숨은 용은 모르니(潛龍不管風雲事)/ 물속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사는구나(長臥波心自在閒)’

계류가 잔잔히 흐르는 평탄한 지형의 7곡 명월계는 농수정사 북쪽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은 ‘서북 모퉁이로 수 백보 나아가면 반석이 있는데 가히 배회할 만하다’라고 김수증이 곡운기에 기록하였지만, 지금은 강심 얕은 물 위로 다리가 놓이고 물에는 자갈돌이 굴러다니고 있어 그 옛날의 달빛 정취는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정약용이 ‘우마견시(牛馬犬豕)의 오염과 티끌 등 어지럽고 더러움이 형언할 수 없다. 수석이 오염되어 있으니 이곳을 구곡에 넣기에는 불가한 곳’이라고 폄훼한 곳이다. 7곡 시는 조카 창업이 지었다.

‘칠곡이라 넓은 못은 얕은 여울에 이어졌으니(七曲平潭連淺灘)/ 저 맑은 물결은 달밤에 더욱 좋구나(淸連連響越重看)/ 산은 비고 밤은 깊어 건너는 이 없으니(山空夜靜無人度)/ 큰 소나무 외로이 찬 그림자 던지네(唯有長松倒影寒).’

8곡 융의연(隆義淵)은 제갈량과 김시습의 절의를 기려 지은 이름이다. 김수증은 거처하는 곳마다 이 두 사람의 초상을 걸어놓고 숭모할 정도로 두 사람을 매우 우러렀다고 한다. 이곳 역시 정약용은 ‘모두 길가에 있어 아름다운 경관이 없다’고 평했다. 8곡 시는 조카 창즙이 지었다.

‘팔곡이라 맑은 못물 아득히 괴어 있고/ 때마침 저 구름 그늘을 던지네/ 맑기도 하여라 근원이 가까운가/ 물속에 노는 고기 앉아서 바라보네.’

9곡은 첩석대(疊石臺)다. 곡운기에 ‘조금씩 더 나아가면 기이한 바위가 여기저기 나열되어 있고 물은 그 사이를 일사천리로 흘러간다. 이름 하여 첩석대라고 하니 수석(水石)의 빼어난 곳이 이곳에 이르러 다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큼직한 몇 개의 바위만이 남아 옛 모습은 상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9곡시는 외손자 홍유인이 지었다.

‘구곡이라 층층바위 다시 우뚝한데/ 첩첩이 쌓인 벽 맑은 물에 비치네/ 노을 속 저 물결 솔바람과 견주니/ 시끄러운 그 소리 골짜기에 가득하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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