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항 크루즈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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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4   |  발행일 2018-08-24 제36면   |  수정 2018-09-21
바다로 다시 나가는 물길…40년 시간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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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의 양옆으로 산책로와 스틸아트가 지나가고 포스코의 굴뚝이 소실점을 오래 지킨다.

강변은 땡볕이다. 숨 쉬기도 어려운 대기를 뚫고 매표소로 달린다. 원래는 포항운하관 2층에서 매표를 하지만 선착장 바로 앞에 매표소가 마련되어 있다. 마음이 바쁜 사람에게는 얼마나 반가운가. 작은 대기실은 출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모두가 한 배를 탈 사람들이다. 우리는 포항운하와 동빈내항, 송도 앞바다를 거쳐 운하관으로 돌아올 것이다. 잠시 후 매표한 순서대로 배에 오른다. 여정에 대한 두려움도, 뱃멀미에 대한 걱정도 없다. 물론 이별의 손짓을 하며 배를 쫓아 달리는 사람도 없다.


◆ 포항운하

배는 강변대로의 해도교 아래로 들어선다. 어둑한 해도교는 수문을 숨기고 있다. 운하 개통 때 수문을 열어 물길을 텄고, 이제 만조 때면 수문을 닫아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리를 통과하자 운하가 시작된다. 순간의 어둠 뒤 펼쳐지는 빛의 세계는 드라마틱하다. 숨도 쉴 수 없던 대기에 선선한 맛이 감돌고, 잔잔하던 운하의 물결이 배의 등장에 요동친다. 물의 깊이는 1m50㎝정도. “물에 빠지면 헤엄치지 말고 그냥 걸어 나가세요.”

승객들은 모두 시원한 선실에 앉아 뱃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좌로, 우로 움직인다. 혼자 뱃고물에 서서 뒤따라오는 물거품과 먼 소실점을 지키는 포스코의 굴뚝을 바라본다. 운하의 폭은 13~25m로 손을 뻗으면 양옆의 길이 닿을 것만 같다. 물길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나란하고 유쾌하거나 예쁘거나 놀랍거나 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스쳐 지나간다. 물가 양쪽에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집들이 늘어서 있고 창가에, 벽면에, 모퉁이에 그림들이 숨바꼭질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물길 역시 수천 사람의 마을이었다.

그 이전에, 운하는 형산강의 샛강이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형산강은 한 가지를 뻗어 동빈내항으로 흘렀다가 바다가 되었다. 1960년대 말 포항제철이 건설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샛강은 매립되었고 집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오늘, 다시 물길이다. 그 모든 시간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다리 밑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바람을 떠나보내듯 무심히 우리의 항해를 바라본다. 아주 잠깐, 손을 흔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얼굴을 붉히며 그만둔다. 갑자기 수변이 벅적해진다. 물놀이장이다. 풀장 한가운데 우뚝 서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안전요원이 우리를 향해 두 손을 흔든다. 이제 1.3㎞ 운하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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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빈내항에 들어서면 먼저 죽도시장이 나타난다.

◆ 동빈내항

배는 동빈내항으로 들어선다. 죽도시장이 보이고, 퇴역한 군함인 포항함과 작은 조선소도 지난다. 내항의 양안을 살피느라 몸과 눈이 바쁘다. 땅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는 수많은 건물들, 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정박된 수많은 배들. 그 소리 없는 소란과 활기와 힘과 질서가 쩌렁쩌렁 울린다.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삶에의 긍지를 느끼게 하는, 기막히게 멋진 모습이다. 과거 많은 물새들이 숨어있던 너른 갈대숲은 한 줌 자취도 없다. 갈매기들은 내가 과자 봉지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는 듯 제 갈 길을 간다.

동빈내항은 영일만 안쪽 깊숙이 들어와 예부터 천혜의 항구였고, 한때 포항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다. 포항제철의 건설은 동빈내항이 국제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곧 신항이 건설되었고, 동빈내항은 구항으로 물러났다. 지금은 구룡포항이 어항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물류 기능은 포항신항과 영일만항이 맡고 있다. 지금 동빈내항은 소형 어선들이 드나드는 항구지만 해경함, 군함, 연구함, 화물선, 어선 등 아주 다양한 배들이 정박해 있다. 이름을 불러 본다. 재훈, 창양, 은성, 삼봉, 일진, 금광, 탐해 등. 저것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일지도. 혹은 포부이거나, 기대이거나. 해양수산청, 여객선 터미널, 활어 위판장을 지나며 꽃봉오리 같던 내항이 점점 펼쳐진다. 흰 등대 아래에 두 사람이 누워 낮잠 잔다. 등대를 기점으로 내항은 끝이다. 이제 큰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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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청, 여객터미널, 활어위판장을 지나며 멀리 포스코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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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 물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강심장이다.

◆ 큰 바다를 가르며

배가 속도를 낸다. 해안의 도시가 멀어진다. 도시는 마치 백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바다는 광대하고 멀리 곶이 희미하다. 바다에서 먼 육지를 바라보면 애절한 그리움 같은 감정이 솟는다. 마치 이역만리에서 귀향하는 사람처럼, 마치 이역만리로 떠나는 사람처럼. 노란 등부표의 바깥 해역을 달리며 송도 해수욕장을 바라본다. 검푸르게 우거진 송도의 송림 아래에 무명실처럼 가늘게 놓인 모래사장이 보인다. 수십만의 인파가 몰렸던 너른 백사장과 갯벌은 1980년대의 전설이다. 지금 그 전설의 시대를 소환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송도 해수욕장이 열린다. 그나저나 바다 위에 점선으로 놓인 저 노란 부표는 해역의 표식일까 오탁방지막일까.

형산강 하구가 가까워진다. 역시 포스코는 지구적 스케일의 스틸아트다. 고개를 돌리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 물 위에 서서 낚시를 하고 있다! 아찔하다. 뇌가 쨍 소리를 낸다. 신인가. 사실 그들은 콘크리트 땅을 디디고 서 있다. 원래는 바닷물이 형산강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만든 물막이 방파제였다고 한다. 횟집이 따닥따닥 붙어 죽 늘어서 있었고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팔았던 곳이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한 위험으로 철거하고 이제는 추억과 방파제 밑동과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만 남았다.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형산강 63㎞의 물줄기가 여기서 바다가 된다. 형산강이 정말 너른 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배가 운하관 선착장에 도착한다. 한 배에 올랐던 사람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이별의 포옹도 없이 시크하게.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주·부산 방향 경부고속도로 포항IC로 나간다. 포항시청 방향으로 간 뒤 계속 직진해 형산강변 희망대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포항운하관이 보인다. 포항 크루즈는 동빈내항을 지나 송도 앞바다를 크게 돌아 들어오는 A코스가 기본, 동빈내항을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B코스는 기상 악화 시 운항된다. 대인 1만원, 12세 미만 소인은 8천원. 첫 출항은 오전 10시10분, 마지막 출항은 오후 6시 10분이며 각 출항시간과 출항 간격은 전화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054)253-4001, 4002. 8월부터 추석 전까지 야간 운항도 한다. A코스에 포스코 북서쪽 해상이 포함된 50분 코스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8시 출항. 대인 1만 2천원, 소인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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