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우리도 국민 취급해 달라’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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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3   |  발행일 2018-08-13 제31면   |  수정 2018-08-13
[월요칼럼] ‘우리도 국민 취급해 달라’

아내가 부업으로 운영하던 찜닭가게의 문을 닫기로 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며 ‘레드오션’에 뛰어든 지 꼭 7년 만이다. 그동안 매년 되풀이되다시피 하던 조류인플루엔자(AI) 공습에도 버티더니 지난해 이후 악화된 경기불황에는 두 손을 들었다. 더구나 창업 때와 비교하면 재료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고, 비록 골목상권이지만 임대료도 인상됐다. 반면에 국민음식이 된 찜닭 가격은 7년 동안 10% 남짓 오르는 데 그쳤다. 올 들어서는 외식경기와 소비심리가 더욱 얼어붙으면서 매출이 거의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그래도 음식·숙박업의 5년 생존율이 겨우 18% 정도인데 7년 이상 견뎠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문제는 장사를 그만두겠다며 가게를 내놓은 곳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림잡아도 반경 100m 인근에만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국가경제의 실핏줄이자 서민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뛰는 상가 임대료와 2년 새 29% 오른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무제, 장기불황에 따른 소비침체 등 악재가 겹치면서 폐업 도미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심지어 외환위기 때보다 장사하기 더 힘들다는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말이 사장이지 차라리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 낫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경기둔화, 자영업 일감 감소, 불황, 폐업으로 이어지는 30년 전 일본의 자영업 붕괴 사이클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자영업이 처한 우울한 현실은 각종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년 한 해 자영업에 새롭게 뛰어든 사람은 48만4천여명, 반대로 사업을 접은 자영업자는 42만5천여명이다. 가게 10곳이 문을 열었다면 반대쪽에서는 8곳이 간판을 내렸다는 말이다. 올해는 폐업하는 자영업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선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업계 생태계가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생계형 자영업의 1년 유지율은 83.8%, 5년 생존율은 29.6%에 그친다. 오죽하면 영세자영업자의 생존율이 암환자 생존율보다 낮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까.

가파르게 늘고 있는 자영업자의 빚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금융당국의 대출 억제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액이 549조2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4년 전보다 60%가량 늘어난 것이다. 더군다나 저축은행·카드사 등에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거나 5곳 넘는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은 경우 등 고위험 대출자가 지난 3월 기준으로 15만명에 육박한다. 자영업 가구당 부채도 이미 1억원을 넘어섰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본격적인 은퇴에 돌입한 베이비붐세대가 너도나도 자영업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4월 말 현재 생활밀착형 100개 업종의 개인사업자 수를 보면 60대 이상이 174만명으로 1년 새 9.8%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퇴직금에 대출까지 얻어 인생 2막을 시작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령층일수록 소비 트렌드에 둔감하고 대출상환 능력도 떨어져 자칫 생존경쟁에서 실패하면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이 청년층만 겨냥할 게 아니라 중장년층에도 집중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나를 잡아가라’ ‘우리도 국민 취급해 달라’며 거리로 뛰쳐나간 570만 자영업자의 절규를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말한 대로 이들은 최저임금보다 못한 소득으로 버티면서도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마침 정부가 이번 주에 대책을 내놓기로 한 만큼 자영업을 살릴 혜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갈 길이 바쁘더라도 일자리안정자금과 근로장려금 확대, 카드수수료 인하 등 퍼주기식 단기 처방만으로는 곤란하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 포화 상태인 자영업의 구조조정 지원 등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자발적인 폐업을 희망하는 자영업자를 위한 컨설팅 등 출구전략을 도와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자연스럽게 자영업자의 수를 줄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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