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시진핑 실종사건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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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3   |  발행일 2018-08-13 제30면   |  수정 2018-09-21
무역전쟁 등 인민 불만 높아
무소불위 시진핑 흔적 지워
‘숙이는 법 배워야 머리 든다’
왕옥산의 글귀 되새겨보면
中굴기 위해 잠시 숙이는듯
20180813
이정태 경북대 교수

베이징 시내 중심에 역사문화거리인 난루구상이 있다. 베이징을 찾는 관광객이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필수방문지가 되고 있는 곳이다. 거리에 들어서면 전통가옥을 개조하여 만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도열해 있다. 찻집, 음식점은 물론이고 재미난 조각품이나 장신구,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 가운데 참새방앗간처럼 반드시 들렀다 가는 소품가게가 있다. 영원한 중국 주석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있는 가게다. 입구부터 마오쩌둥의 동상,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의 정치인 사진과 문화대혁명 등 역사적 소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중국인민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성지다. 그런 성지에 최근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랐다는 시진핑 주석이 사라진 것이다. 불과 최근까지 마오쩌둥의 동상이나 사진보다 더 많이 진열되어 있던 시진핑 주석 관련 제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2기 집권에 성공했다. 올해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규정하고, 연임제한 규정도 폐지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었다. 대중적 인기도 마오쩌둥을 능가할 정도였다.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동상이나 부조로 만들거나 카드·컵·티셔츠같은 기념품은 부지기수였고, 길거리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중국몽’ ‘위대한 중화의 부흥’과 같은 시진핑의 어록이 적힌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심지어 시진핑의 어록을 실시간으로 게시하는 가게도 등장했다.

그런 시진핑 주석이 어느 날 갑자기 세인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완전히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알려진 바로는 시진핑 초상화 먹물투척사건이 발단이 되었고, 몇몇 원로들의 경고성 발언, 중미무역전쟁에 대한 책임론과 가짜 백신사태에 대한 불만증폭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정치에서 그 정도의 실책과 반대는 일상적인 수준이다. 또 지금 시진핑의 집권능력과 통제능력을 고려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의 플래카드는 물론이고 시중에 나와 있는 기념품까지 정리할 정도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의 심장지역인 허난성 지위안시에 위치한 도교의 성지 왕옥산 자락에서 그 의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해발 1천715m인 왕옥산은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의 배경이며 헌원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산으로도 불린다. 제단이 있는 산 정상으로 오르다 보면 굽어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외길에 가로 놓인 나뭇가지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데 그 나무둥치 위에 글귀가 걸려있다. ‘고개 숙이는 것을 배워야 머리를 들 수 있다.’

중국 거리에서 시진핑이 사라진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인민들의 소리, 하늘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 인민들의 소리를 잠시 간과한데 대한 반성이다. 시진핑 정부가 미중무역전쟁에서 자존심과 교만을 앞세워 맞대응하는 바람에 인민들의 이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 이에 대한 책임인 것이고, 시진핑과 공산당 정부는 이를 겸허하게 수용한 것이다.

곧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린다. 중국공산당의 전·현직 지도부가 모두 참여하는 회의다. 비공식회의지만 국가방향이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회의다. 중국지도부는 회의에서 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냐,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중국굴기’냐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진핑이 설계한 위대한 중화의 부흥, 중국의 꿈, 중국특색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왕옥산 고사의 의미는 머리를 쳐든다는 것이 결론이다. 시간의 문제이고 순서의 문제일 뿐이다. 중국 내에서 나타난 ‘시진핑 실종사건’을 오판해서는 안 된다. 대약진 운동 이후 궁지에 몰린 마오쩌둥이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고무하더니만 문화대혁명을 발동하여 정적을 처단했던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문화대혁명을 통해 봉건적 잔재를 일소한 중국이 덩샤오핑을 앞세워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착수하면서 오늘날의 부자 중국을 만들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의 굴기는 이제 시작이다.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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