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대·구·포’ 산업 위기지역 지정을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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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3   |  발행일 2018-08-13 제30면   |  수정 2018-09-21
20180813
최수경 경제부 차장

사방이 병풍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풍을 차단해주는 바람막이가 아니라 태산같은 장벽이 우뚝 서 있다.

대구의 자동차부품, 구미의 휴대폰·디스플레이, 포항의 철강 등 그동안 수출전선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온 지역의 주력업종들이 줄줄이 신음하고 있다.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양새이고, 출구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의 상반기 지역경제보고서를 정독해도, 전문가 초청 경제 세미나에 참석해 귀를 세워봐도 들리는 것은 지역 산업현장의 곡(哭)소리뿐이다.

만성화된 저임금 구조 속에서도 대구 근로자 상당수가 생계수단으로 의지해 온 차부품업종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기반으로 경주·영천·경산·대구를 잇는 차부품벨트가 경쟁력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현대차의 해외수출 업황이 나빠져 지역 차부품도 고전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차는 최근엔 노사분규가 상존하는 울산보다 충남 아산 공장에 더 애착을 갖는 분위기다.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는 광주시와 합작 완성차 공장(법인)을 설립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임금은 높지 않지만 지자체 등이 주택·육아·교육·의료서비스를 지원하면 실질 생활수준은 근로자 평균을 웃돌 수 있다는 청사진까지 제시됐다. 정부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다. 성사되면 인근에 차부품업체가 집결할 것이 자명하다. 현대차 노조의 반대로 실현가능성은 두고봐야겠지만 현대차가 차부품 수급의 무게 중심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기려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대구 경북지역 수출비중의 35%를 차지하는 구미 휴대폰·디스플레이 업종은 중국 제조업 굴기(起)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제품 갤럭시 노트9을 출시했지만 이 물량을 소화할 시설기반이 구미엔 없다. 2010년쯤 삼성은 인건비가 싼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의 거센 추격에 위기감을 느끼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시장에서 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투자를 늘린단다. 이 또한 구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LG는 2013년을 전후해 신규 디스플레이공장 대부분을 파주로 옮겼다. 구미 LCD공장은 신규 투자가 없으면 문닫는 일만 남았다.

자동차·조선 등 전방산업의 부진으로 철강산업도 위태위태하다. 철강도시 ‘포항’은 비명을 지른다.

올해는 미중무역전쟁 여파로 수출길도 막혔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추가관세를 면제해주는 대신 올해 대미 수출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제안했고, 다급한 우리 정부는 이 제안을 덥석 수용했다. 그 결과 올해 대미 수출물량 한도는 벌써 초과돼 다른 판로를 찾아야 한다.

물론 대구 경북은 물·의료·로봇·친환경차 등 신산업 육성을 외쳐왔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제조업 고도화를 위해 연착륙이 필요한데 그때까진 기존 업종이 완충재 기능을 해야 한다. 정부 눈치를 보는 대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도 수도권과 충청 및 호남만 바라본다. 그래서다. 대구·구미·포항을 산업위기 특별대응지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각종 세제 및 재정지원을 통해 악전고투 중인 지역 중소기업의 업종전환 유도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밑그림은 해당 지자체가 그려야 한다. 실기(失期)는 곧 ‘도시경쟁력의 종언’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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