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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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3 07:35  |  수정 2018-09-21 10:55  |  발행일 2018-08-13 제14면
20180813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여름방학을 하고 일주일을 꼬박 대구 천주교회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나 같은 아마추어는 그저 역사책을 읽기만 하면 되는데 연구자도 아니면서 역사서의 행간에 비어져 있거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나친 내용을 찾아 메우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여기에다 기껏 자료를 찾아서 정리한 내용이 저장에 문제를 일으켜 절반 이상을 날려 버렸다. 공부를 하면서 자꾸만 관심이 가는 인물이 서상돈 선생이다. 개인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가계도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서상돈 선생은 대구를 대표하는 항일 역사인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서상돈의 가족사에서 천주교를 빼놓을 수 없다. 천주교 첫 박해는 1785년 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서학을 공부한다는 이유로 적발되었는데 양반들은 살려주면서 중인인 김범우만 밀양으로 귀양을 보냈다. 이때 서상돈의 고조부인 서광수는 가족을 각지로 흩고 둘째 아들만 데리고 상주 배모기로 피신했다. 5대를 거쳐 서상돈은 1850년 김천에서 태어나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가 있는 대구 새방골 죽전으로 와서 살았다. 18세 때 병인박해로 삼촌 세 명이 순교했다. 그는 외가와 천주교인들의 도움으로 보부상이 되었고 대구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1907년 광문사 문회에서 나라의 빚을 갚고 국권을 지키기 위해 국채보상운동을 할 것을 발의했다. 이 일로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연구자들에 의해 선생의 행적에 대해 친일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구 대표항일운동가지만 아직 기념사업회도 없다. 심지어 그의 무덤은 안내판 하나 없고 후손들조차 최근 정부가 가난하게 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에게 주는 생활비를 지급받았다는 보도도 있다. 천주교회마저도 교구청에 흉상을 세워두면서도 기리는 데 인색한 모양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들 서병조의 친일 행적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국채보상운동에도 불구하고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를 당했다. 이듬해 1911년 천주교 대구대목구가 설정되고 프랑스인인 드망즈(안세화) 주교가 교구장으로 왔다. 당시 프랑스 주교들은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본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서상돈은 1913년 사망했고 그의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 서병조는 드망즈 주교의 사목방침을 충실히 따랐으며, 3·1운동 때는 자제단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방해했다. 이후 친일에 앞장을 서며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얻었다. 서병조는 오늘날 국회의원 격의 중추원 참의까지 올랐다. 광복 뒤 1949년 반민족행위로 체포되어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풀려났다. 2009년 정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에 포함되었다. 이후 서병조의 형제들과 아들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서상돈 선생의 증손자 대에서 지금의 한국천주교회가 자랑할 만한 두 명의 신학자인 사제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박정희 독재에 저항을 했고, 한국교회의 복음화를 위하여 연구하고 헌신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무더운 여름, 나는 서상돈 선생의 가계도를 작성하면서 200년이 넘는 가족사에 얽히고설킨 상처와 영광을 살펴보면서 역사를 살아내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있다. 어느 가족이든, 개인이든 참되고 정의로운 가치를 이어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험난하다는 것이다.

다시 8·15광복절을 맞는다. 그리고 8월29일이 되면 경술국치일을 맞는다. 일제강점기를 오롯이 정의롭게 살아내기란 선조들에겐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은 쉽게 친일의 단맛을 쫓아갔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친일이었고, 친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성경말씀처럼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금 드러내어 고백하고, 지금부터 잘 살면 될 일이다. 반대로 독립이나 민주화, 통일운동 과정에서 정의와 평화로 일하며 고난의 길을 살아온 삶도 보란 듯 인정받기 바란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니 나도 만만찮게 살아왔지만 내 가족들을 힘들게 한 기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역사는 냉정하고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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