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년째 주저앉은 규제혁신, 文 정부 추진할까

  • 김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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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1   |  발행일 2018-08-11 제23면   |  수정 2018-09-21

문재인정부가 규제혁신을 새삼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규제개혁 현장회의에 참석, 인터넷 전문은행의 진입장벽을 낮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른바 ‘은산(銀産)분리 원칙’을 수정하겠다는 것.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은행까지 접수해 사금고화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문 대통령은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 카카오나 KT 등 정보기술 업체들의 인터넷 은행 투자확대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지난달 19일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 첫 현장 방문지로 분당 서울대병원을 찾아 당뇨 치료를 위해 외국산 혈당기를 구매했다가 고발당한 시민의 사연을 듣고 “의료기기의 낡은 규제 관행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7년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의료서비스산업 발전법안의 통과에도 희망이 생겼다.

규제 혁신은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안이다. 이 전 대통령 시절에는 ‘규제의 전봇대를 뽑겠다’는 표현으로 산업과 국민생활 전반에 걸친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했고, 박 전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 등에 비유하며 규제혁신을 주창했다. 반면 이 같은 규제 혁신은 지금의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측의 반론 제기에다, 사회적 공감대를 확실히 하지 못하면서 지지부진해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개최하려다 수 시간 전에 취소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는 규제혁신의 알맹이가 없어 이낙연 국무총리가 연기를 긴급 건의한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이날 논의하려던 ‘개인정보를 기업이 활용하기 쉽게 하려는 정책’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 강하게 반발한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규제혁신을 ‘붉은 깃발’에 비유하며 의지를 보였다. 1800년대 영국에서는 자동차가 등장하자 마차산업의 쇠퇴를 우려해 붉은 깃발법을 제정, 자동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퇴행적 규제로 자동차 산업이 뒤처졌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으로 압축된다. 문 정부는 그동안 공정하고 정의로운 배분에 좀 더 무게를 실어온 것이 사실이다. 규제혁신은 소득주도 혹은 공정과는 다소 배치된다. 방향을 튼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절박하다는 진단이 나왔다는 의미다. 기왕 꺼낸 규제혁신을 문 대통령 발언대로 ‘실사구시적 과감한 실천’으로 우리 경제의 질과 양을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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