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징벌적 손해배상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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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1   |  발행일 2018-08-11 제23면   |  수정 2018-08-11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제조사 등 가해자가 고의적·악의적·반사회적 의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큰 금액의 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도다. 실제 발생한 손해액 외에 징벌적 성격의 배상금을 추가로 부과해 장래에 그러한 범죄나 부당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의미가 담겨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요즘 우리나라에서 잇단 차량 화재로 논란의 중심에 선 BMW에 수십억원의 징벌적 배상금을 물린 법원 판결이 있다. 1996년 아이라 고어씨는 자신이 9개월 전에 구입한 BMW 스포츠 세단을 자동차 정비소에 맡겼다가 제조업체가 사소한 결함을 감추려고 출고 전에 도색을 다시 해 팔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비록 외관상으로는 아무 흠이 없었지만 BMW가 완전하지 않은 차를 판매해 자신을 농락했다며 400만달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당시 차량 가격의 약 50배에 달하는 20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차량 충돌로 가솔린 탱크가 폭발해 운전자 등이 숨진 1979년 포드자동차 핀토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징벌적 배상금 1억2천5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천40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완성차 업체는 아니지만 세계 2위 에어백 제조업체였던 일본의 다카타는 에어백 결함을 숨긴 혐의로 벌금과 보상금 등 모두 10억달러를 부담하게 되자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6월 파산하기도 했다.

국내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제조물책임법에 관련 규정이 도입돼 지난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또 하도급법, 대리점법, 환경보전법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들 법률에 규정된 배상 규모는 피해액의 최대 3배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로 한정된다.

BMW뿐만 아니라 그동안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도 보듯이 이들 업체가 리콜 등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것은 배상책임이 지나치게 가벼운 탓이 크다. 이참에 우리나라도 징벌적 손해배상 상한을 높이고, 제품 하자와 결함 입증 책임도 소비자가 아닌 회사가 지도록 법과 제도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제 도입도 서둘러 외국 대기업이 브랜드 파워만 믿고 국내 소비자를 우습게 아는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야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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