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相殘(상잔) 의 終焉(종언)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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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9   |  발행일 2018-08-09 제27면   |  수정 2018-08-09

내전의 또 다른 표현은 동족상잔이다. 6·25를 겪은 까닭일까. 왠지 우린 이 음울한 단어에 익숙하다. 미국 남북전쟁, 중국 국공내전 등 세계사에도 숱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고, 어느 곳에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형제상잔도 있다. 검은독수리 새끼는 뒤늦게 부화한 동생을 공격해 종국엔 죽음으로 몰고 간다. 뱀상어 새끼들은 아예 어미 뱃속에서부터 상잔(相殘)을 벌인다. 동물왕국의 막장 드라마다. 한데 여기서도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늘 약한 놈이 희생된다.

희생자 수로 따지자면 태평천국의 난에 비길 상잔도 드물다. 농민 봉기로 촉발된 태평천국의 난은 1850년에서 1864년까지 기독교계 신흥종교 배상제회 세력과 청나라 조정이 중국 대륙에서 벌인 내전이다. 사망자 수만 2천만~7천만명으로 추산된다니 가공할 잔혹의 흑역사다. 전체 사망자를 정확히 집계하지 못할 만큼 희생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배상제회 교주 홍수전은 스스로 ‘태평천국의 천왕(天王)’이라 칭하고 하나님의 둘째 아들, 예수의 동생을 빙자했다. 홍수전의 군대는 한 때 18개 성(省)을 종횡하고 베이징을 위협할 만큼 세력을 넓혔다.

제주도 난민 사태도 예멘 내전에서 비롯됐다. 예멘만큼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상잔도 드물다. 남북 예멘이 전쟁을 벌이다 1989년 극적으로 통일했지만 1994년 남예멘이 독립하면서 다시 내전의 포성에 휩싸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은 북예멘이 예멘 전역을 장악하지만, 불행히도 남북통합을 이룬 알리 압둘라 살레는 독재자였다.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독재정권은 종식된다. 그러나 이번엔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이 총부리를 겨누었고, 사우디와 이란이 개입하면서 예멘은 ‘중동분쟁의 축소판’으로 전락했다. 지금까지 민간인을 포함해 2만여명이 희생됐고 해외로 탈출한 피란민이 28만명에 이른다.

한반도 비핵화는 동족상잔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고 항구적 평화를 구축할 분수령이다. 하지만 6·12 북미정상회담 후 비핵화 시계(視界)는 더 뿌예졌다.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비핵화는 꼭 이뤄내야 할 소명이다. 불가역적 비핵화만이 상잔(相殘)의 종언(終焉)을 담보할 수 있어서다.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실천에 옮길까. 김정은의 흉금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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