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풍요 속의 빈곤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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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9 07:52  |  수정 2018-08-09 07:53  |  발행일 2018-08-09 제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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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우기자<경제부>

KB금융연구소가 지난 6일 펴낸 ‘2018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부자는 전체 인구의 0.54%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가계 총금융자산의 17.6%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부자보고서는 현금이나 예금·주식 등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개인을 ‘한국 부자’로 규정했다. 물론 부자의 기준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자산 10억원을 가진 게 부자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을 제외한 현금이나 예금·주식 같은 것만 10억원이 넘는다고 하니 이들을 부자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부자수와 그들의 자산 규모는 2012년부터 매년 평균 10%대로 늘었다. 대구도 7년 새 부자가 두배(2011년 6천100명→2017년 1만2천200명)나 증가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대구의 부자수는 전국에서 넷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성구(4천900명)는 제2 도시 부산의 부촌 해운대구(4천명)보다 부자가 많았다. 달서구(3천100명)도 전국 6대 광역시 가운데 셋째로 부자가 많았다.

대구는 수입차도 유난히 많다. 2017년 1월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전국 229개 자치구 가운데 외제차 수입 상위 10곳 중 3곳이 대구에 있다.

씀씀이도 크다. 지난해 대구지역 백화점 판매액은 2조2천551억원으로 대형 소매점 판매액 조사가 시작된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구의 경제 관련 지표들은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대구는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5년째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다. 2016년 기준 지역내총생산(49조7천억원)도 1년 전보다 1.6%(전국 평균 증가율 4.5%) 늘어나는데 그쳐 광역시·도 가운데 꼴찌였다.

빈곤율도 높다. 2016년 12월 기준 대구의 인구 대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비율인 수급률은 4.3%로 17개 시·도 가운데 광주(4.7%)와 전남(4.4%)에 이어 셋째로 높다. 전국 평균(3.2%)에 비교해서는 1.1포인트나 높다.

의문이 남는다. 대구에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거의 없다. 99% 가까이가 직원 50명 미만의 작은 업체다. 주력 산업인 섬유산업은 쇠락한 지 오래고 자동차부품산업도 위기를 겪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도 전국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산업구조는 기형적이다. 제조업 비중은 22.6%(2015년 기준)로 낮고 빈자리는 서비스업(77.1%)이 메운다. 자영업자 비율은 22.8%(2016년 기준)로 전국(평균 21.2%, 광역시 평균 19.1%)에서 가장 높다. 내수침체 등 각종 악재 속에서 인건비마저 급격히 올라 대구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그런데 어떻게 부자가 많고 소비 수준이 높은 것일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는 가난에 허덕이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종수와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처럼 엄청난 부를 거머쥔 부자 청년 벤이 등장한다. 종수는 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는 개츠비들이 너무 많아, 뭐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저런 사람들….” 현실도 그렇다. 대구는 수수께끼의 도시다. 손선우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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