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보행자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대구

  • 윤철희
  • |
  • 입력 2018-08-08   |  발행일 2018-08-08 제27면   |  수정 2018-09-21
20180808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최근 민경욱 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에서 교통사고가 잦은 열 곳 중에 인천·대전은 없고, 부산·광주·수원은 각각 한 곳인 반면, 대구는 범어네거리를 비롯하여 무려 세 곳이나 들어가 있다. 대구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범어네거리가 서울 영등포교차로와 수원역교차로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올라있으니 무슨 긴 말이 필요할까. 인구나 교통량을 감안했을 때 대구를 전국 최고의 교통사고 도시라고 지목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관계기관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도로 곳곳에 시민의 주의를 당부하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는데, 펼침막에 적힌 문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가마 같은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보행자의 울화통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어무이 아부지 단디 살펴보고 건너시이소”. 땡볕 속을 전후좌우 분간 없이 허우적허우적 걸어가는 늙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가상하지만 아무리 ‘단디’ 살피고 건너려 해도 횡단보도 신호 주기를 걸음걸이가 못 따라가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 대구시는 아직도 ‘신체 건장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성인 남성’을 표준으로 삼던 1970년대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단디’ 살펴본 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오토바이가 굉음을 울리며 앞길을 덮쳐오고, 횡단보도 한가운데 정차를 하고 신호를 기다리는 ‘야마리’ 까진 운전자들에다, 초고층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온 고급승용차들이 1차로로 끼어들기 위해 보행자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역주행으로 횡단보도까지 물고 들어오는 곡예운전을 하고, 녹색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에게 빨리 비켜달라는 경적까지 울리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매일 되풀이되고 있는 곳은 변두리가 아니라 구청과 경찰서가 어깨동무하고서 빤히 지켜보고 있는 범어네거리다. 범어네거리에서 동서남북으로 곧게 뻗어있는 인도, 결코 차도가 아닌 인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보행자의 보행권이 보장되는 안전지대가 아니라 오토바이들의 해방구요, 주차요금도 주차단속도 없는 승용차들의 주차장이 된 지도 오래다. 그나마 다소곳이 주차만 해 두면 감지덕지다. 인도에서 주행까지 하는 승용차를 구경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무단횡단, 보행 중 휴대폰’은 퇴장이라고? 무단횡단과 보행 중 휴대폰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행위는 자해 수준이지 타인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보며 폭주하는 오토바이 운전자, 운전대를 잡고서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낄낄대고 있는 승용차 운전자는 자해 수준이 아니라 보행자들에게는 테러 수준의 위협이 된다. 그런데도 왜 보행자만 퇴장되어야 하나? 잠시 차도로 내려선 보행자에게 운전자들은 “디질라꼬 환장했나”라며 거친 욕설을 퍼부어댈 수 있는 데 반해, 보행자들은 인도 위에 주차한 승용차에 자칫 흠집이라도 낼까 가재걸음을 걸어야 하고, 인도 위를 거침없이 주행하는 오토바이와 승용차의 진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으로 조신하게 비켜서야 한다. 그리고 주일만 되면 대구시는 교회 앞 인도와 도로를 교회전용 주차장으로 ‘용도변경’한다.

대구시의 모든 버스정류장에는 대구시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이 공동으로 제작한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 포스터는 “당신의 안전 불감증… 함부로 무단횡단 하시겠습니까?”라는 도발적 질문과 함께 지난해 대구에서 일어난 6만여 건의 교통사고의 책임을 보행자의 안전불감증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136명의 사망원인은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과속, 운전 중 휴대폰 조작과 같은 운전자 과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사실관계를 이따위로 왜곡해도 되나? 이 폭염에 보행자의 보행권만이라도 보장해준 뒤 보행자의 안전불감증을 탓해야 될 것 아닌가! 대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대구가 어떤 도시인지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1시간만 대구시내를 걸어 다녀보라고 권할 것이다.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