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북 단양 장회나루 충주호 유람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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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9   |  발행일 2018-06-29 제36면   |  수정 2018-06-29
죽순처럼 솟은 푸른 봉우리 ‘옥순봉’
물속 비치는 바위가 거북인 ‘구담봉’
배 띄워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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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나루 앞으로 유람선이 귀항 중이다.

뱃머리에 서서, 거대하고 푸른 세계를 잔뜩 껴안고 나아간다. 검은 새가 물수제비처럼 수면을 달리고, 어부가 물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얻는 곳. 충주호는 1985년 남한강 물길을 댐으로 막으면서 생겨난 호수다. 단양, 제천, 충주에 걸쳐있어 엄청 크다. 호수로 가슴을 열고 있는 기슭들을 지난다. 바람에 귀는 먹먹해지고, 태양빛에 정수리와 어깨는 뜨겁게 단다.

벼랑처럼 가파른 길 내려가면 장회나루
가뭄에 호숫가 산들은 허연 배 내놓아
예부터 구담봉·옥순봉 유람위해 발길

부인 떠나보낸 이황, 단양군수로 부임
퇴계·두향, 詩 짓고 거문고 탄 강선대
강선대 절벽 단양 관문 삼은 단구동문

제천땅에 들어서면 광대해지는 물길
마을에 들어선 물…4만명의 고향 잠겨
산 위로 이전한 청풍나루서 경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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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봉은 단양 8경 중 하나로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 단양 장회리 장회나루

단양 충주호의 장회나루. 나루로 내려가는 길이 벼랑처럼 가파르다. “천천히 내려오세요. 천천히. 물이 많이 낮지요.” 호숫가 산들이 허연 배를 내놓고 있다. 수목의 경계선이 곧 호수의 수위. 충주호의 평상수위는 해발 140m 정도지만 지금은 해발 120m 정도로 낮아져 있다. “2층과 3층이 좋아요.” 3층 갑판에 올라 출항을 기다린다. 나루터 맞은편 물가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강선대다. 그 옆에 무덤 하나가 가물가물하다. 단양의 기녀 두향의 묘다.

이황(李滉)은 1548년 단양군수로 부임했다. 당시 그는 좀 불행했다. 두 번째 부인이 세상을 뜨고 둘째 아들이 요절했으며 친형을 을사사화로 잃은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두향을 만났다. 두향은 세조 시절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도모에 참여한 사대부의 후손이었다. 미모는 물론 거문고와 시문에 뛰어났고 매화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전한다. 때때로 두향은 퇴계와 함께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를 탔다고 한다. 퇴계에게 두향은 위로였다. 아, 안내방송이 시작된다. 출항이다.

“매점에는 맥주도 팔고… 담배는 갑판에서 태우시고….” 선장님이신가. 구수하고도 낭만적인 입담에 귀를 기울인다. 뱃사람의 DNA에는 ‘멋’이라는 사슬이 있는 듯하다. 포인트를 지날 때마다 방송이 나온다. “에- 지금 왼편으로 보이는 것은 단양 8경 중 하나인 구담봉(龜潭峰)으로서….” 구담은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예부터 수많은 학자와 시인묵객이 그 절경을 찬미했는데 특히 퇴계는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라 극찬했다. 배는 흰 포말을 일으키며 구담봉을 거침없이 휘감고 달린다.

“에- 지금 보이는 것은 옥순봉(玉筍峰)으로….” 옥순은 비 갠 후 여러 개의 푸른 봉우리가 죽순처럼 솟았다는 뜻이다. 제천 땅에 속해있지만 제천 10경뿐 아니라 단양 8경에도 포함된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있을 때 두향이 옥순봉을 단양에 포함시켜 달라고 졸랐단다. 퇴계가 청풍(현재의 제천) 부사에게 부탁해 봤지만 허락될 리가 있나. 그러자 퇴계는 옥순봉 절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고 단양의 관문으로 삼았다. 청풍부사 속 좀 끓었겠다.

옛날부터 구담봉과 옥순봉을 보기 위해 배를 띄우던 곳이 단양의 장회(長淮)나루다. 장회의 물길은 남한강 줄기에서도 급류가 심한 곳이라 노를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지 않아 무진 애를 먹었다 한다.

장회에는 자린고비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영조 때 충북 음성에는 조륵이라는 구두쇠가 살았는데, 어느 날 장독에 앉은 파리가 장을 묻혀 달아나자 여기까지 쫓아왔단다. 물길 너머로 날아가는 파리를 보며 그는 “장이다, 장이 날아간다”고 외쳤다. 파리가 훔쳐간 장이 무척이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조륵은 평생 구두쇠로 돈을 모았지만 나중에는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나라에서는 그의 착한 행적을 기려 자인비(慈仁碑)를 세워 주었다. 자애롭고 인자한 사람이란 뜻이다. 자인비가 자린비가 되고, 시간이 흘러 오래된 비석에 옛 고(古) 자가 붙었다. 자린고비다. 사람들은 그가 외치던 ‘장’이라는 말에서 이 지역을 ‘장회’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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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봉. 비 갠 후 푸른 봉우리가 죽순처럼 솟았다는 뜻이다. 제천 10경이자 단양 8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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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나루 전망대. 퇴계와 두향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조성 됐다.

◆ 단양과 제천을 오가며

옥순봉을 지나면서 제천 땅에 든다. 단양의 충주호는 협곡 사이를 흐르는 강물 같은데 제천 땅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광대해진다. 옛적엔 마을이고, 광장이고, 길이던 자리에 들어찬 물. 4만여 명이 고향을 잃었다. 이 넓고 깊은 물이 이상하게도 덜 무섭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저 물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어느 마을을 둘러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숫가에는 초록의 숲이 무성한 언덕들, 호수로 향해 난 테라스를 가진 몇몇 집들, 주인 없이 홀로 물고기를 기다리는 낚싯대들이 있다. 어부의 배가 정오의 귀가를 위해 달린다. 배가 언덕으로 난 길 앞에 멈추자 배 주위로 새들이 모여든다. 한 소녀가 가만히 옆에 서더니 세상을 바라본다. 어쩐지 뜨거운 동지애가 솟는다.

멀리 청풍나루가 보인다. 나루 위 산꼭대기에 정자가 앉았다. “곧 청풍나루에 도착합니다. 나루 위는 청풍문화재단지로 충주호 건설 때 수몰될 것을 산 위로 이전한 것이지요.” 도착의 어수선함 속에서 뱃머리를 떠나 조타실 옆 한 뼘 그늘에 선다. 붕. 부웅-. 두 번의 기적을 울리며 배는 청풍나루에 도착한다. 배를 나루에 바짝 대는 동안 선장님과 조타수가 암호 같은 구호를 복창한다. 어시장 경매사의 언어만큼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청풍나루에서 군것질 많이 하시고, 10분 뒤 다시 승선하십시오.”

장회나루로 돌아간다.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고개를 젖히고 잠에 들었다. 고요한 뱃길이 이어진다. 옥순봉과 구담봉을 지나자 장회나루가 보인다. 나루 뒤편으로 제비봉이 우뚝하고, 물길 따라 말목산, 멀리 소백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충주호와 이별이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덧 술이 다하고 임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두향이 퇴계와 이별할 때 쓴 시다. 퇴계는 부임한 지 9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떠났다.

퇴계가 떠나던 날 두향은 매화분 하나를 이별의 정표로 보냈고 이후 두향은 관기 생활을 정리하고 강선대에 초막을 짓고 퇴계를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냈다. 20여 년이 지나 임종을 맞은 퇴계는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고 유언했다. 퇴계의 타계 이듬해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자결했다. 그리고 유언대로 강선대 옆에 묻혔다. 그때부터 단양 기생들은 강선대에 오를 때마다 반드시 두향의 무덤에 술 한 잔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장회나루 가파른 길을 오르다 돌아본다. 술 한 잔 없는 유람이었지만 어떠랴, 기약 없는 소상팔경 유람이 오늘만 하겠는가.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55번 중앙고속도로 단양IC에서 내려 5번국도 단양 방면(단양로)으로 좌회전한다. 북하삼거리에서 36번국도 제천 방향(월악로)으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장회나루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은 충주호관광선과 충주호유람선으로 나뉜다. 충주호관광선은 청풍나루까지 편도 또는 왕복(1시간40분) 운항하며, 충주호유람선은 장회나루를 출발해 옥순대교에서 되돌아와 단양 방면 제비봉과 말목산을 둘러보는 코스다. 매표소가 다르고 탑승 장소도 다르다. 청풍나루 왕복 쾌속선은 1시간. 왕복은 1시간30여 분. 왕복 요금은 대인 1만5천원, 소인 1만원. 승선 시 신분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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