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인비노’ 황승호 소믈리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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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2   |  발행일 2018-06-22 제41면   |  수정 2018-06-22
500여종 보유한 ‘대구 와인 1번지’…안주 넘어선 메뉴도 40여가지
레드·화이트 와인별 셀러 별도 운영
지방 접하기 힘든 오르가닉와인 구비
레스토랑&바 형태…가성비도 좋아
스페인 셰프가 주는 이베리코산 하몽
스카모짜·파에야·감바스 알 아히요…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인비노’ 황승호 소믈리에
2005년 중구 대봉동에서 대구의 새로운 와인바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인비노. 그 인비노의 산파역인 황승호 소믈리에가 사라질 뻔한 인비노를 2010년 재인수했고 최근 수성구 범어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와인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셰프 교육까지 받았다.

대구에서 와인 좀 안다는 이들이 인정하는 와인바가 있다. 바로 중구 대봉동에서 문을 연 ‘인비노(INVINO)’. 라틴어로 ‘비노(VINO)’는 ‘와인’이란 뜻이다. 인비노는 ‘In vino veritas(진실)’의 준말. 즉, ‘와인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2005년 대구에서 태어나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지역의 첫 명실상부한 와인바였다. 2000년대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와인동호회 붐 등에 힘입어 2008년 국내엔 무려 2천개 이상의 와인바가 우후죽순 들어선다. 바야흐로 한국에 와인춘추전국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렇게 잘나가던 인비노가 어느 날 한발 뒤로 물러선다. 다들 인비노가 사라진 줄 알았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한 것에 불과했다.

수성구 범어동 대구MBC 뒷길로 확장 이전했다. 대봉동시대에서 범어동시대로 넘어왔다.

현재 인비노 대표인 소믈리에 황승호를 만났다. 그는 한국소믈리에협회 대구경북지회장이기도 하다. 아시아 와인 트로피·코리아와인챌린지·스페인와인챌린지 심사위원,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칠레 등의 와이너리투어를 위한 ‘인비노 와인 & 쿠킹클래스’까지 운영한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인비노’ 황승호 소믈리에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인비노’ 황승호 소믈리에
훈제 모차렐라 치즈로 만든 샐러드 ‘스카모짜’(위). 스페인 출신 요리사인 오스카가 하몽을 칼로 잘 저며내고 있다.

인비노가 동면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뭔가를 준비했다. 와인과의 마리아주(어울림)를 위해 아내와 함께 셰프의 길에 들어선 것. 와인만 알아선 승산이 없었고, 와인 옆에 안주를 넘어선 제대로 된 음식이 붙어다니도록 하고 싶었다. 그는 이제 음식까지 주무를 줄 아는 소믈리에 셰프가 됐다. 계명문화대학 식품조리학과 출신인 아내도 인비노 주방을 지키고 있다. 스페인 현지 조리사 오스카까지 가세했다.



◆ 아파트 영업사원으로 출발

그는 종합건설회사 아파트 부문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부도. 재차 집안 큰형님이 운영하던 수입주류 도매상에 들어갔지만 또 부도. 잠시 프랑스 와인투어를 다녀온 게 전부였다. 국내 와인 전문수입회사인 ‘아간코리아’에 들어간다. 그때 영국에 본원을 두고 있는 와인전문 교육기관인 WSET 레벨 1, 2를 수료하고 인증서까지 획득하였다. 하지만 또 부도였다. 내리 3번 부도를 맞은 셈. 다행히 본사 직영 와인소매점인 와인하우스는 살아 있었다. 전국에 10여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대구의 인비노다. 일단 부산 광안리 민락동에 위치한 회사 직영 와인바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이때 참 많은 걸 배운다.

초창기에 와인배틀이랍시고 와인상식을 과시하다가 숨은 고수한테 망신도 많이 당했다.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들다는 걸 느꼈다. 와인 지식의 한계를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어떤 고수 손님은 그랑 크뤼(Grand Cru·프랑스 부르고뉴나 알사스 지방 최고급 포도원이나 최고급 와인을 만들어 내는 마을을 가리킨다. 때때로 보르도 메독 지역에 있는 61개의 최고급 포도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족보를 달달 외울 정도였다. 그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그런 손님들이 모두 지금의 그를 만든 사부들이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인비노’ 황승호 소믈리에
스페인 새우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

◆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와인리스트

‘대구 와인 1번지’인 인비노. 보유하고 있는 와인은 500여종. 레드·화이트와인별 셀러를 별도로 운영한다. 지방에서는 접하기 힘든 오르가닉와인 등도 만날 수 있다.

그는 가게를 리모델링할 때 색다른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냈다. 각종 와인박스를 활용해 세계지도 벽도 만들었다. 샴페인 뚜껑도 버리지 않고 앙증맞은 모양의 미니의자를 만들어 카운터 앞에 피규어처럼 비치해 놓았다. 문화아지트 같은 지하 공간은 와인파티가 가능하게 꾸며놓았다. 밤이 되면 창 쪽 조망이 와인과 매칭된다. 동쪽 도심의 불빛이 야생화처럼 피어난다. 중년 단골을 위해 추억의 팝송을 자주 흘려보낸다.

여기만의 특징은 뭘까. 백화점, 할인점 등 여느 와인숍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와인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헝가리·포르투갈·오스트리아 와인, 그리고 최근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스파클링 와인과 샴페인 등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방에선 가장 많은 화이트와인을 판매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꾸준하게 와인리스트가 변경된다. 그래서 인비노에서는 별도의 와인리스트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와인셀러도 과학적으로 운영한다. 1년 내내 항온·항습이 유지되도록 설계했다. 고객과 함께 수시로 그 공간에 들어간다. 그 셀러에서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추천해준다. 그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쌍방향 대화가 인비노의 가장 큰 특징이다. 손님의 궁금증, 그리고 손님의 두려움 등을 말끔히 해소해주는 게 소믈리에다. 가르치지 않고 그냥 함께 공유하려고 한다. 이제 그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는 단계에 온 때문이다.

“15년 전에 광풍처럼 불었던 와인 열풍, 그게 갑자기 식기 시작한 이후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와인시장 규모는 크지만 대구의 와인문화는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게 사실입니다.”

그의 지적대로 왕성하게 운영되었던 지역의 여러 와인동호회의 활동이 지극히 저조한 상태다. 그러나 그는 지금을 와인의 제2 도약기로 분석한다.

“경기가 나빠서 와인시장이 위축되었을 뿐 초창기 와인시장에 비해 와인소비량은 더 늘고 있습니다. 동호회 대신 개인적인 와인 소비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어요. 와인동호회도 대규모에서 소규모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 대구와인동호회를 이끌었던 ‘대구와인클럽’은 활동이 저조한 반면 소규모로 운영되었던 대구와인클럽 내 클라레와 플레르 등은 오히려 더 활동적이다. 또한 공개된 동호회는 아니지만 일부 소수 회원끼리 운영되는 고수의 모임 역시 꾸준하게 돌아간다. 또한 대구에서 유일하게 와인을 수입하고 있는 와인전문수입사 ‘뱅쿱’은 최근 이탈리아 명품와인 ‘라 스피네타(La Spinetta)’ 전 품목을 수입하며 전국적으로 유통망을 확장 중이다.

◆ 인비노 스토리

서울·수도권 및 부산 지역에 집중되어있던 와인시장. 하지만 인비노가 중구 대봉동에 오픈되면서 대구·경북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와인바람이 불게 된다. 인비노는 와인숍 & 바 형태로 3~4년 유지된다.

“인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잠깐 반짝 흥행을 일으켰는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한때 부산의 모 주류도매상한테 팔렸죠. 하지만 1년도 못 버티고 다시 매물로 나왔습니다. 그걸 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참담하더군요. 그래서 제 분신과 같은 인비노를 2010년 인수해 지금까지 키워온 거죠. 이제 인비노는 제 것이 아니라 지역민의 것이라 봐요.”

이제 인비노는 와인소매점 기능은 사라지고 레스토랑 & 바 형태로 자릴 잡았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 현재 그가 직접 주방과 홀을 총괄한다. 아내는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부부는 매일 파티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확장 이전하면서 과감하게 스페인 현지 셰프 오스카까지 채용했다. 그한테 스페인요리를 배우기 위해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안주 같은 음식이 있다. 바로 통째로 사용하는 150만원짜리 이베리코산 하몽이다. 주문하면 오스카가 직접 나와 칼로 썰어낸다. 그 광경을 보는 재미도 있다. 몇 점 미리 썰어 냉장 관리되는 푸석한 여느 하몽과 식감이 확연히 다르다.

“와인바 음식이 그렇고 그렇지….” 그런 지적을 안 받기 위해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장은 매일 보려고 한다. 예약제 메뉴인 한우등심스테이크(1인분 풀코스 가격 5만5천~10만원). 그가 등심에 박힌 힘줄과 막을 직접 제거한다. 메뉴는 40여가지. 훈연한 모차렐라치즈로 만든 샐러드 ‘스카모짜’, 해물리소토 같은 느낌의 스페인 전통음식 ‘파에야’, 스페인식 새우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 등이 눈길을 끈다. 풀코스의 경우 2~3가지 에피타이저는 매일 바꾼다.

와인 가격도 무척 착하다. 서울 수입사와 직거래 해서 유통마진을 대폭 내린 덕분이다. 와인에 맞는 음식도 그가 직접 추천해준다. 하지만 레드와인에는 고기, 화이트와인에는 생선과 해물. 그렇게 무슨 공식처럼 단정적으로 와인과 음식을 중매하진 않는다. 세상의 식재료만큼이나 사람들의 식성도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단체 손님에겐 보너스로 직접 와인특강도 무료로 챙겨준다. 작은 체구지만 그의 동선은 속이 잘 영근 것 같다. 수확 직전의 포도에서 느껴지는 터질 듯한 ‘충일함’ 같은. 아무튼 인비노도 잘 익어갔으면 좋겠다. 수성구 범어동 국채보상로 186길 8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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