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좌파-우파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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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9   |  발행일 2018-06-19 제31면   |  수정 2018-06-19

좌파, 우파라는 정치 용어는 프랑스 혁명 때 생겨났다. 당시 소집된 프랑스 국민공회에서 의장석 좌측에는 급진주의인 자코뱅파가 앉았고, 우측에는 온건노선의 지롱드파가 배석한 데서 유래됐다. 두 정파는 지향점부터 달랐다. 자코뱅파는 소시민층과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삼으며 급진적인 사회개혁과 강력한 중앙집권을 주장했다. 반면 지롱드파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지방분권을 옹호하며 부유한 부르주아를 대변했다.

애초부터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던 두 정파의 대결은 국왕 처형 문제를 둘러싸고 극단으로 치달았다. 결과는 로베스피에르의 맹활약에 힘입은 자코뱅파의 승리였다. 그는 ‘국왕이 무죄일지라도 죽이지 않으면 혁명이 죽는다’는 그 유명한 선동으로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렸다. 이후 로베스피에르 본인이 단두대에 끌려가기전까지 1년 동안, 반혁명 분자로 몰려 학살당한 프랑스 국민이 수십만 명이었다니 누구를 위한 피의 혁명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역사적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 때의 자코뱅파처럼 좌파가 공포정치를 자행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 좌파는 주로 억압의 대상일 뿐이었다. 특히 군사정권과 권위주의 보수정권은 좌파를 불온세력으로 낙인찍어 짭짤한 재미를 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좌파=종북=빨갱이’를 뜻하는 ‘좌빨’이란 말이 잘도 먹혀들었다. 물론 그 시절에 ‘좌파’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특히 보수의 텃밭인 TK에선 더욱 그랬다. 이와 관련해 TK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진보 성향인 필자의 친구가 했던 하소연이 생각난다. 국립대 교수인 그는 보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구가 고향임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왕따’처럼 살았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MB정권 때는 ‘교수 블랙리스트’에라도 올랐는지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협박성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로 인한 충격과 공포로 한동안 우울 증세를 겪었다고도 했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그 친구 역시 적어도 정치성향 때문에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보수 성향의 사람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샤이 보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만한 격세지감도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좌파-우파 구분은 지배층이 만든 대결논리일 뿐이고 대부분의 국민은 늘 중도다. 지금 몰락하는 것은 우파가 아니라 사이비 보수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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