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한반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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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9   |  발행일 2018-06-19 제31면   |  수정 2018-06-19
[CEO 칼럼] 한반도의 ‘꽃’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중에서)

4·27 남북 정상회담부터 6·12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남북미 정상들의 화해, 만남, 중재, 공동선언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 주는 강력한 임팩트가 떠올랐다. ‘꽃’은 의미 있는 존재로의 갈망을 담은 시로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 앞에 선 남북미 간 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계속되며 무력충돌 일보 직전의 첨예한 대결 구도를 이어왔다. 심지어 북미 정상 간에 모욕적인 언사를 주고받으며 무수한 갈등과 적대감으로 상대방에게 매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한 정상은 한반도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끝내고, 마침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길로 첫발을 내디뎠다. 공동선언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얻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을 합의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거듭 확인했다. 판문점 회담을 계기로 서로를 인정하고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의미를 지닌 화해와 상호존중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또 나머지 한 짝의 문을 마저 열듯, 극적인 우호 관계로 승화시킬 또 한 번의 역사적인 회담이 있었다. 6월12일 우여곡절 끝에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성사됐다. 북미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의 시대를 이끄는 중요한 합의를 이뤄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변함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1953년 휴전이 되고 정전협정 후 60년 넘게 적대관계를 이어오던 양국이 긴장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신뢰관계를 맺기로 하면서 이제는 동등한 파트너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남·북, 북·미 정상 간 회담을 통해 마침내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열렸다. ‘꽃’이 피듯 아름답게 피어난 것이다. 이는 곧 북한이 새로운 국제 질서에 귀속하도록 합의를 이룬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세계가 전쟁과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이 커다란 방향과 흐름을 누구도 막지 못할 것임을 세계 앞에 천명한 것이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와 ‘너’가 고립된 객체가 아니라 ‘우리’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꽃’이 진정한 평화와 공동 번영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 때 비로소 김춘수 시인이 노래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은 진정한 화해와 통일의 나무로 굳건히 자라나게 될 것이다.

감성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기왕 일이 이렇게 진전되었으니 어렵게 만난 남북미가 적대적 객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관계로 거듭나서 새로운 아시아시대의 희망과 우정, 연합의 정신으로 꽃피길 바라는 것이 필자의 여망이다.

한반도는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로 나가기까지 숱한 후퇴와 좌초의 위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일차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꽃’은 피었으나 그 꽃이 원만한 비핵화(CVID 수준의 해결)의 열매를 맺기까지는 여름의 태풍과 겨울의 혹한을 견뎌내는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모름지기 적대관계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격상하는, 한반도의 궁극적인 화해와 통일을 이끄는 평화의 나무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기를 기대한다.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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