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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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9   |  발행일 2018-06-19 제30면   |  수정 2018-06-19
유권자는 이번 地選에서
유효표를 통해서든
무효표를 통해서든
충분히 의사 표현을 했고
이제 정치권이 답할 차례
[3040칼럼]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다

11세의 초등학생 소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TV를 보다 이내 불편해졌다. 때마침 주방세제 광고를 하고 있었는데, 그 광고 문구가 “미국 전역의 ‘여성’들이 기름투성이 냄비와 프라이팬과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버지에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소녀의 아버지는 딸이 편지를 쓰도록 용기를 북돋웠다. 이 11세 소녀는 당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힘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통해 의사표현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즉시 실행에 옮겼다. 이 소녀의 편지를 받은 당시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어린이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 린다 엘러비, 여성 인권 변호사 글로리아 알레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방세제 회사였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지 몇 주가 흘렀고, 소녀는 놀랍게도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 뉴스 진행자 린다 엘러비, 여성인권 변호사 글로리아 알레드 등 모두로부터 답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후 광고 문구는 ‘여성’에서 ‘사람’으로 바뀐다. 이 소녀는 자라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유엔 친선대사이자 배우가 됐고, 지난 5월 영국의 해리 윈저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 바로 할리우드 배우 매건 마클의 이야기다. 매건 마클은 본인이 11세때 경험했던 의사표현과 그에 대한 응답을 받았던 이 일이 훗날 여성인권운동가가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지난 1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60%가 넘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다. 그 결과 특정 정당이 한번도 당선된 적이 없던 곳에서 당선되는 이변도 일어났고, 특정 정당이면 전통적으로 무조건(?) 당선이 되던 곳에서 낙선이 되는 등 유권자들은 확실하고도 냉정하게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보여줬다. 지역주의와 특정 정당을 무조건 찍는 과거의 ‘묻지마 투표’로부터 탈피해 이제는 우리 지역의 실제 살림을 잘 꾸려갈 인물, 내 삶을 바꾸어 줄 수 있는 정책과 능력을 가진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는 성숙함을 보여준 것이다.

유권자들은 특정 후보와 정당에 표를 주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효표로써 정치적 의사를 나타내기도 한다. 무효표는 투표장에 아예 가지 않는 기권과는 다른 차원이다. 투표장에 가서 표의 값어치를 무효화시킴으로써 정치적 의사를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효표다. 이번 선거에서 무효표가 또 다른 방식의 정치적 의사 표현 방식임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경기도지사의 투표결과가 아니었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핫한(?) 곳이기도 했던 경기도지사 선거의 무효표는 유효투표수의 1.8%인 10만9천여표였다. 서울시장의 경우 무효표가 유효표의 1.2%인 5만7천여표에 머물렀음을 감안해 볼 때, 무효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경기도 유권자들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더 세심하게, 더 진심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유효표를 통해서든 무효표를 통해서든 유권자들은 충분히 의사표현을 했고, 이제 정치권이 이에 응답할 차례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놓고 정치평론가나 분석가들은 여당이 잘해서 칭찬의 의미로 승리를 안겨준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비록 지금의 현실은 최악의 청년실업률, 팍팍한 살림살이지만 앞으로 좀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지금보다는 잘 먹고 잘살게 해 달라는 바람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매건 마클이 여성인권운동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의사표현, 용기를 준 남성(아버지),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에서부터 ‘문제의(?)’주방세제 회사까지의 응답이 있어서였을 테다. 특히 그녀가 영부인 등으로부터 받은 답장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광고문구의 변화는 그녀의 향후 행보에 정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인이었을 터다. 의사표현에 대한 응답을 받음으로써 한 소녀의 꿈이 비전으로 자라고, 변화가 현실이 된 것처럼,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보여준 유권자들의 의사표현이 지역 경제 발전과 계속 살고 싶은 지역이란 확실한 응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강선우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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