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6월, 역사의 그 뜨거운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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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8 08:10  |  수정 2018-06-18 08:10  |  발행일 2018-06-18 제18면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6월, 역사의 그 뜨거운 메모장

놀라운 일입니다. 드디어 70년 만에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나란히 서서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리는 영상이 매스컴을 통해 세계로 전송되었습니다. 거창한 쇼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젠 설마 뭔가 이루어지겠지 하며 회담의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TV 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그 어떤 필력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엉뚱하게도 북한의 인공기와 미국의 성조기가 나란히 꽂혀서 배경을 이루고 있는 화면에 눈길을 주는 한 패널이 있었어요. 저 국기들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천으로 만든 깃발이 아니라 조형물인 것 같다고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 말의 행간을 읽었다고나 할까요. 하나라도 무의미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소한 것일지라도 감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1948년 남과 북으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보는 광경,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던, 심지어 전운마저 감돌던 시간들, 몇 주 전만해도 서로 밀쳐내며 보이콧을 외치던 일이었지 않습니까.

너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일에 막상 맞닥뜨리면 우리는 가끔 비현실적인 생각에 빠지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선과 감정이 옮겨가게 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간접적인 표현으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한 방향을 보면서 별을 헤아려서는 길을 잃기 쉽다는 말도 있는 게 아닐까요.

이 ‘세기의 악수’라는 헤드라인이 신문 1면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실린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민족에게 6월이란 정말 뜨겁고도 가슴 뛰는 특별한 역사의 메모장이구나.

기억은 우리를 배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얼마간 변형·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몽당연필이 천재의 머리보다 낫다’라는 말로 유명한 어느 성공한 사업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메모장을 재산으로 꼽고 있습니다.

메모는 어떤 상황의 과정을 적으면서 진실이라는 걸 구가할 수 있고, 또 그런 일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있는 것이어서 시간 속에서 소멸되거나 퇴색되어가는 사실들을 다시 불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문학작품에서는 그 작은 메모 하나가 발단이 되어 그 사람의 생애를, 혹은 인간의 본질을 헤아려보는 글을 쓰는데 아주 중요한 빌미를 제공할 때가 많지요.

생생한 현장묘사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적절한 감정의 비유, 그리고 받아 적고 싶은 문장으로 유명한 여행저술가 한비야씨는 모든 기본 문장이 ‘일기장’에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루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감정, 감상, 독서 후에 또는 사람들과의 미팅 도중에도 끊임없이 메모하고 받아 적은 글들을 말합니다.

그런 메모장은 일종의 취재수첩 역할도 하고 독서노트일 수도 있고 또는 반짝이는 감성이 피어나면 문득 떠오르는 말들을 저장해놓은 기억의 창고인 것이지요. 우리의 이 벅찬 일들을 6월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문득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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