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속으로 !] 포항 약국 ‘묻지마 범행’ 피해 여종업원 끝내 숨져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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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6   |  발행일 2018-06-16 제8면   |  수정 2018-06-16
방치된 조현병 환자 살인범 돌변
관리사각지대 무방비 상태 노출
체계적 복지행정 차원 접근 시급

[포항] 최근 포항지역 한 약국에서 40대 남성이 저지른 살인 미수 사건(영남일보 2018년 6월11일자 9면 보도)의 피해 여성이 끝내 숨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묻지마’ 범행에 남편과 어린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이들에 대한 치료·보호조치 확대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5시30분쯤 포항의 한 약국에 A씨(46)가 들어갔다. A씨는 반팔 티셔츠·반바지 차림의 지극히 평범한 행색이었다. 하지만 약국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그는 ‘악마’로 돌변했다. 갑자기 칼을 꺼내든 것이다. 그의 칼끝은 약국에서 일하던 약사와 종업원을 향했다. 이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범행을 저지른 그는 순식간에 약국을 빠져나갔다. 약사와 종업원은 주위 도움으로 병원에 급히 옮겨졌다. 약사는 중상을 피했지만 30대 여성 종업원은 안타깝게도 입원 엿새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약국 인근 CCTV 영상을 분석해 이날 밤 10시쯤 자신의 집에 있던 A씨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었다. 그는 “약사와 종업원이 욕설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약사와 종업원이 A씨를 전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며 “A씨가 조사에서 횡설수설 했으며,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사건 당시 환청·환시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2016년 5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1년 만에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피해망상(과대망상)·환청·환각·정서적 둔감 등의 증세를 보인다. 사회적 불안장애 증상(대인기피증·사회공포증·공황장애증상)도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조현병은 유전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는 뇌 질환이다. 약물요법이 매우 중요하며 망상이나 환청, 행동 문제를 효과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 있다”면서 “치료를 소홀히 하면 병이 재발하고 악화되는 만성질환처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질환에 대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70대 노모와 함께 기초수급자로 지낸 A씨는 그렇지 못했다. 방치된 조현병 환자가 결국 살인마로 돌변해 30대 여성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포항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에 의한 범죄가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현병 환자의 가족도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에 겨워하고 있다. 기초수급비만 지원할 게 아니라, 체계적인 복지행정 차원에서 접근해야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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