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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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3   |  발행일 2018-06-13 제30면   |  수정 2018-06-13
패주해도 흩어지지 않고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면
정신차릴 틈이 없는 野도
절망의 순간을 헤쳐나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것
[수요칼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황태순 (정치평론가)

우리나라 선거에서 100% 득표한 후보가 있다. 바로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이승만 대통령이다. 야당의 유력한 도전자 조병옥 박사가 선거기간 중에 갑자기 사망했다. 단독후보가 된 이승만 대통령은 10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 역대 가장 큰 표차가 난 선거는 언제 어느 선거였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의 기록이다.

노무현 대통령 4년차에 있었던 2006년 지방선거는 사상 초유의 참패였다. 우선 표차를 보자. (비례대표 광역의원) 정당투표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은 1천8만6천표, 열린우리당은 405만6천표를 얻었다. 양당 간 표차는 무려 603만표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단 1석을 얻었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광역의원은 한나라당이 100% 석권했다. 열린우리당은 0%로 단지 비례대표 광역의원 5명만 배출했다.

여권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당내에서 친노와 비노 세력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분당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런 사분오열·우왕좌왕 속에서 맞이한 2007년 대통령선거는 해보나마나였다.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532만표 차로 가볍게 따돌리고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이때 안희정·이해찬으로 상징되는 친노들은 폐족(廢族)과 2008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 체제를 출범시킨다. 문 대표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동교동계 중심의 당내 비주류는 사사건건 문 대표 체제를 흔들었다. 그해 4월29일 4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패(全敗)였다. 비주류들은 기회를 만난듯 문 대표를 흔들었다. 문 대표의 돌파구는 혁신위원회를 발족하여 1년도 채 남지 않은 2016년 총선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은 결국 분당으로 귀결된다. 2015년 12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가 탈당하여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문재인 대표 체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때 문 대표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바로 “좀 더 작아지더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문 대표의 승부수는 성공했다.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을 누르고 원내 1당으로 등극했다. 그러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내홍에 빠져든다. 그리고 2017년 조기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정부가 출범한다. 2006년 최악의 참패 이후 10년의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탈환했다. 패주를 하면서도 결코 대오가 흩어지지 않았고, 정신줄을 놓지 않았기에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 제7회 지방선거가 있다. 여론조사 수치로만 보면 선거결과는 자칫하면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도 있을 지경이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여권의 드센 기세에 야권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밀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선거가 이번으로 끝이 아니다. 썰물같이 빠져나갔던 파도도 언젠가는 밀물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문제는 그때를 마냥 손 놓은 채 그냥 기다려선 밀물이 와도 별무소용이다.

미군 해병대의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 바로 장진호 전투다. 당시 미 해병1사단을 지휘하던 올리버 소장은 진격을 하면서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퇴각진지를 만들었다. 전멸의 위기 속에서도 올리버 소장은 흔들리지 않고 질서 있게 퇴각한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완전히 포위되었으니 어디로 가도 적군을 향한 진격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지만, 그냥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더 비극적으로 고통스러울 뿐이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무엇인가 이 절망의 순간을 헤쳐 나갈 방도를 함께 마련해야만 한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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