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자리 잃어 씁쓸한 안동 통일신라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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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4   |  발행일 2018-06-04 제29면   |  수정 2018-06-04
[기고] 진자리 잃어 씁쓸한 안동 통일신라 문화재
권영시 시인

안동의 영남산 자락 옛 낙동강나루가 견항 또는 포항진이다. 견항 가까운 회화나무에서 처녀들은 종종 그네를 탔다. 그 나무 안쪽으로는 철길이 놓여 있다. 영남산과 철길 사이엔 또 법흥사지 7층 전탑이 있다. 전탑으론 국내 최고 높이 17m, 크기도 최대다. 전탑은 안동역 옆에도 있다. 법림사 7층 전탑인데 지금은 5층만 남아서 높이는 법흥사지 전탑의 딱 절반 정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안동대도호부 고적 조에 ‘법흥사는 부성의 동쪽에, 법림사는 부성의 남쪽에 있다’고 했다. 1608년에 완성된 ‘영가지(永嘉誌)’가 더 상세하다. 고적 조에 법흥사와 법림사 모두 ‘지금 세 칸만 남아 있다’고 했다. 따로 고탑 조에서 법흥사 전탑은 부성의 동쪽 5리에 있다. 성화 정미년(1487)에 고쳐 쌓았는데, 위에는 금동 장식이 있었다. 이고(李股)가 철거하여 관청에 냈는데, 녹여서 객사에 사용하는 집기로 만들었다. 법림사 전탑은 부성의 남문 밖에 있으며 7층이다. 탑 위에는 법흥사 탑과 같은 장식이 있다. ‘만력 무술년(1598) 명나라 장군 양등산의 군인들이 철거했다’고 기록됐다. 전탑의 이런 아픈 내력을 알고 보면 어이없고 씁쓸한데도 열차 진동에 또 밤낮없이 시달린다.

‘영가지’는 ‘여지도서’보다 1 세기 반 이상 앞서 편찬된 안동지방 역사지리지다. 서애 류성룡의 권유로 권기(權紀)가 찬술했다. 이때만 해도 세 칸 남았다고 했던 통일신라의 두 사찰에 전탑으로서 가장 오래된 법흥사 7층 전탑은 국보 제16호이고, 법림사 5층 전탑은 보물 제56호다.

법흥사 전탑 옆엔 임청각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 있다. 종택은 탑동파 분파조 증손 후식공이 1708년에 지은 것으로, 2004년 발행 ‘고성이씨 안동 전거 연원과 문화유산’ 책자 중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신라시대 거찰인 법흥사 구지를 개기하여 수많은 동자부처와 16척의 금불상을 낙동강에 버리고 기공함에 노승이 견몽하여 “이 터는 내 터이니 아무도 집을 지을 수 없다” 하여 기어이 집을 지으면 큰 앙화를 당할 것이다’하며 위험함이 수차였다. 그 후 어린 두 아들이 요사함에 일시 주저하였으나 망언에 굴함이 없어 사불범정(邪不犯正)의 굳은 신념으로 공사를 강행하여 완성하였다는 것.

법림사 전탑은 안동역 서쪽에 높이 2.6m 당간지주와 한데 있다. 법림사에는 ‘흙으로 만든 부처 셋과 흙으로 만든 코끼리와 사자가 각 한 개씩 있다. 지당은 길이 36척 너비 10척이다. 못 가운데 돌로 만든 코끼리와 용이 있다. 청련(靑蓮)이 한 그루 있는데 30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영가지에 기록됐지만, 기차역 건립 때 절터를 헐고 성토했을 것이다. 전탑과 당간지주 남쪽은 옹벽, 서쪽은 둑이다. 게다가 전탑은 지표보다 40㎝ 더 푹 꺼진 자리에 서있다.

중앙선 남행열차는 안동 가까운 서지역에서 갑자기 거꾸로 빙 돈다. 그러다가 낙동강을 끼고 안동역에 닿는다. 일제가 철길을 깔 때 임청각을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 다수 출생한 집’이라며 그 앞으로 방향을 틀어 회화나무 안쪽으로 행랑채 등을 헐고 깔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며 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 모두 찾아내겠다고 했다. 그 뒤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문화재청장 등이 오간 뒤 관계기관에서 임청각 복원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신라시대 거찰인 법흥사 구지 일원과 안동역 일대를 통일신라 문화재 성역화로 검토하면 어떨는지. 머지않아 옮겨질 중앙선 선로 밑과 안동댐 진입로 밑자리에도 혹여 동자부처와 금불상 조각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법림사지를 포함해 당대 문화재의 진자리가 되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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