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투, 위드유, 당신이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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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1   |  발행일 2018-06-01 제21면   |  수정 2018-06-01
[기고] 미투, 위드유, 당신이 나입니다
김보현 대구시민센터 매니저

술집 화장실 벽에 있는 작은 구멍. 그 구멍을 막은 꼬깃꼬깃한 휴지를 보고 눈물지은 밤이 있었다. 취한 와중에 구멍 너머 몰래카메라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휴지를 뭉치고 있는 당신은 또 다른 나였다. 남자친구에게 맞고 온 당신 손을 피가 안 통할 때까지 잡고 또 잡은 밤도 있었다. 어째서 경찰서에 가지 않냐, 헤어지지 못 하냐 다그치다 결국엔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그런 무수히 많은 밤이 있었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날이 밝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상처를 내보여도 바뀌는 게 없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그저 서로를 위로하는 것만이 다음을 살아갈 힘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짧은 단신기사 속 당신의 이야기는 죽음의 냄새를 풍겼고, 그것은 결코 타인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친구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내 이야기였다.

서지현 검사와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억눌려 있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와 ‘운동’이 됐다. 대구 또한 마찬가지다. 대학 교수, 문화·예술계, 지방선거 후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용기였고, 상처받은 삶의 한걸음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를 위해 기자회견을 열고 상황을 마주하는 자리에 동석했다.

지역사회는 이들과 함께 걷고 있는가. 언론은 이 사안을 꾸준히 다뤄왔는가. 사회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고 있는가. 우리는 불안한 피해자들을 보듬고 있는가. 오히려 폭로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대학에서 피해자가 고통 받은 시간은 무려 8년이다. 폭로 사실이 드러나고 교수는 겨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다. 문화예술계 가해자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경북지역의 한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인 가해자는 “그런 적 없다”며 피해자를 오히려 꽃뱀으로 몰아 음해하고 고소했다.

미투운동을 공작 또는 음모론적 관점에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미투운동이 진보진영 파괴를 위한 공작이며 대기업 뉴스를 덮기 위한 음모라고 믿는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성 범죄자로 본다’며 여성들의 연대를 손가락질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미투는 권력관계 속 성폭력을 주로 폭로한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이다. 개인이 혼자 힘으로만 저항하기 힘든 구조 속에서 공론화와 연대라는 전략이 펼쳐진다.

미투, 위드유. 여성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당신이 나’라고 동일시하며 연대한다. 사회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한참 전 일을 두고 유난 떤다’거나 ‘여자 근처에도 가면 안되겠다(펜스룰)’ 같은 말은 곪아있는 마음을 한 번 더 찌른다. 폭로를 가로막고 있는 말들을 치우고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자. 서로가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는 지역사회는 분명 훨씬 더 건강한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직도 홀로 지난 일을 되새기며 우는 누군가의 밤들이 있다. 그들이 마음에 걸려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저릿하다. 이제 시작이다. 잠깐의 소동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나아가 ‘그래도 괜찮았던’ 구조를 흔들어야 한다. 여전히 여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아슬아슬한 오늘을 살고 있다. 말해도 괜찮은 여성, 고소해도 괜찮은 여성, 연대의 선두에 나서도 괜찮은 여성이 더 많이 나온다면 홀로 우는 밤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김보현 대구시민센터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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