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리포트] 정당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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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5 07:39  |  수정 2018-05-25 07:39  |  발행일 2018-05-25 제10면
[변호인 리포트] 정당한 이유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인 차은택·송성각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1심과 같이 각각 징역 3년과 4년에 처했다. 재판부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언급하며 권력을 가진 피고인의 언행이 피해자에게는 칼을 든 것과 같은 압박감이 될 수 있었으므로, 사인으로 살아오던 과거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는 판사의 단순 꾸지람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법률상 면책 주장을 배척한 이유 부분이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피해자가 부담·압박을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등 위법성의 인식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위법성의 인식은 무엇이며, 특히 형사 항소심에서 그 같은 주장을 한 것은 무엇을 노린 변론인가.

형법은 제16조에서 ‘법률의 착오’라는 제목하에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해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해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자신이 무엇을 행하는지 인식해 고의가 존재했더라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행위했다면 책임을 지우기가 어렵다.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강학상 금지착오’라고 한다. 주의할 것은 그러한 법률이 있는지 몰랐다는 법률의 부지(不知) 주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면책범위가 무한대로 늘어나고 법률사문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하려는 자는 건축법 등 관련법규의 존재와 내용을 모른 채 함부로 무단 용도변경을 해서는 안 된다. 한편 위법의 인식은 그 범죄사실이 사회정의와 조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족하고 구체적 해당 법조문까지 인식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되는 줄 몰랐다고 하는 주장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제16조가 적용되는 사안은 ‘일반적으로는 죄가 되는 경우라고 알고 있지만 피고인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해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그릇 인식한 경우’가 그에 해당하고, 그릇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본조에 의해 처벌을 면한다. 정확하게는 책임을 면하는 것이다.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기 위해서는 행위의 위법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고 조회의무를 다해야 한다. 위법성의 인식에 필요한 노력의 정도는 구체적 행위정황과 행위자 개인의 인식능력, 행위자가 속한 사회집단에 따라 달리 평가돼야 한다. 예컨대 변호사인 국회의원이 의정보고서 형태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면 설사 그가 선관위에 형식적 문의를 했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우수한 지적 능력을 총동원해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했어야만 한다. 또 행위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내용의 국가 회답이 있을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회답만을 근거로 함부로 행위하면 안되고(대법원 2005도3717 판결), 관례에 좇았다는 미명하에 금원공여를 하거나(대법원 94도1017 판결),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횡령했더라도 처벌된다(대법원 90도1604 판결). 심지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면 23년차 경찰관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대법원 95도2088 판결). 단 그와 같이 불성실하나마 조회를 거친 행위는 정상참작 사유에 해당해 형이 조금 감경될 수는 있다(대법원 91도514 판결).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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